“열린 마음으로 양떼 이끄는 ‘목자’될 터”
‘신앙의 스승’ 역할 되새기며
교구민 목소리 듣는 데 노력
유흥식(라자로) 주교는 소탈한 모습과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미소가 매력적이다. 늘 웃는 그의 얼굴과 자상한 눈길은 한번이라도 그를 만난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지난 4월 6일 대전교구장에 착좌한 유흥식 주교를 8일 오후, 교구청 부교구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것 저것 정리하고 준비할 것들 때문에 4월말께나 교구장 집무실로 옮길 것 같다』는 유주교가 대뜸 기자와 마주 않는다. 『나는 이렇게 생긴 의자(소위 말하는 상석)가 싫다』며 『이렇게 하자』는 그의 말에 기자는 잠시 당황스럽다.
『교구장 집무실 탁자도 타원형의 것을 새로 준비하도록 했다』는 유주교의 말에 신학교 총장 시절, 그의 집무실 책상도 그러했고, 총장실을 찾은 교직원들이 마주보고 앉아 일을 보도록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떠오른다. 상대에 대한 배려, 친절이 몸에 밴 그의 진면목을 보는 듯 하다.
유주교는 인터뷰 내내 친교의 공동체, 기도하는 공동체를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선 신자들이 신앙에 맛들이고 기쁘게 살아야 하며, 나아가 교회가 그러해야 하고, 그러한 기쁨을 이웃에,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주교와의 인터뷰는 마치 영성훈화를 듣는 듯 편안함 가운데 진행됐다.
― 착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신임 교구장으로서 포부랄까요, 계획이 궁금합니다.
▲ 지금까지와 크게 달라질 건 없어요. 다만 하느님과 백성들을 향해 열려 있고, 하느님의 뜻과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하반기쯤 교구 신부님들과 대화의 자리를 만들 생각입니다. 신부님들과 많이 대화하고 방법을 모색해서 그분들과 함께 하느님 뜻에 맞는 사목을 펴겠습니다.
주교는 「신앙의 스승」입니다. 따라서 저의 숙제는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속에서 주어진 일에 기쁘게 봉사하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교황님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저는 「목자」로서 남고 싶어요. 교구의 실질적인 일은 총대리 신부님을 비롯한 신부님들께 맡기고, 그분들이 재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주교가 「목자」로서 신앙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대전교구는 풍부한 신앙유산을 물려받은 성지(聖地)의 교구입니다. 신앙의 큰 밭(大田) 대전교구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 순교자는 교회의 보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전교구는 엄청난 장점과 보물을 지닌 셈이지요. 그러나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얼을 이어받고, 순교의 삶을 오늘날에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당히 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적극적인 신앙생활로 순교자적인 삶을 재연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주교님은 「포콜라레 사제」로 불릴만큼 포콜라레 영성이 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포콜라레 영성에 대해 소개해 주시지요.
▲ 신학교에 입학해 얼마되지 않아 성소의 위기를 느꼈을 때 포콜라레 영성을 만나 극복했습니다. 그러니 포콜라레는 저의 사제성소를 살린 영성이라고 할 수 있지요. 포콜라레 영성은 일치의 영성입니다. 단절되고 갈라진 현대에 더욱 요구되는 것이 「일치의 영성」입니다. 말씀을 살아야 하고, 말씀을 살 때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특별히 십자가의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사랑에 가장 큰 모범을 보이신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작은 마리아」로서 살아가는 것이 포콜라레 영성이지요.
― 주교님의 사목표어가 「세상의 빛」(요한 8, 12)입니다. 교회도 갈수록 세속화되고 각박해져 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신자들이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의 빛이십니다. 그 빛은 낮추고 비우고 내가 죽을때 드러납니다. 「십자가를 통한 부활」, 이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올바른 신앙은 죽음 뒤의 부활이요, 십자가 위의 생명이요 부활입니다. 현대인들은 십자가를 지기 싫어합니다. 그래서 빛을 잃어갑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 빛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빛을 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낮추고 비우고 못박혀 죽어야 합니다.
물질이 최고의 가치이고 목적이 되어버린 현대에 교회는 하느님의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이것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교황님의 선종을 온 세계가 슬퍼하고 교황님의 장례미사에 그토록 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것도 바로 교황님에게서 그리스도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관심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을 변호했고 옹호했고 사랑했던 교황님의 모습을 본 것이지요.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과 백성들에 열린 자세를 가질때 성령께서 하느님 백성들을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유주교는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로마에 유학중이던 1981년 유주교는 교황을 알현한 자리에서 『교황님과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러자 교황은 그의 눈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덥썩 그를 품에 안았다고 한다. 그때의 다짐은 이후 나약해지는 유주교의 정신을 일깨우는 채찍이 되고 있다고.
― 2008년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습니다. 교구장으로서 계획이나 당부하실 말씀은?
▲ 60주년은 그동안 걸어온 길을 하느님 안에서 점검해보고 새롭게 좋은 것은 살리고 하느님 안에서 나아갈 길을 찾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신부님들과 함께 대화를 통해서 의견을 모으고 할 일을 찾을 것입니다. 지역적으로도 「행정중심도시」 건설 문제와 맞물려 상응하는 사목적 대책도 마련할 필요가 있겠지요.
「행정도시」 문제는 국가의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제가 다른 나라를 다녀봐도 우리의 서울처럼 이렇게 집중되고 밀집된 나라는 거의 없어요. 그러나 지역이기주의와 정치논리가 난무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그리고 미움을 갖고서는 안됩니다. 충청도 사람들도 행정도시가 여기 아니면 안되다는 논리는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지역이기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사제들과 교구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
▲ 교황님 말씀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했으면 합니다. 복음에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행복하다」고 했어요. 물질만능이란 내가 움켜쥔다는 것이거든요. 그러나 내가 남에게 주면 주님께서 백배로 갚아주시니까, 주는 삶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빛이고 소명이지요. 이것이 또 희망이기도 합니다.
-취임사(요지)-
오늘 제가 여러분을 모신 자리에서 다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 교회와 교구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며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 복음을 증언하고 이를 세상에 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둘째, 생명을 존중하는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대전교구가 아름다운 사회,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앞장서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셋째, 광복 60주년의 기쁨과 동시에 55년 세월의 아픔을 지닌 우리 겨레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윤리적인 불감증을 극복하고 모든 인간과 사회를 구원하는 열린 공동체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리하여 민족의 외적 통일뿐 아니라 복음의 빛으로 화해를 뛰어넘는 사랑과 생명의 문화가 활짝 꽃피는 민족이 내적으로 하나됨을 서서히 준비해 갑시다.
넷째,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는 각국의 이익과 맞물려 여전히 혼잡합니다. 그리고 복음화 비율도 낮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이 지역에 바르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전함으로써 동북아시아의 복음화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선교와 나눔의 공동체가 되어봅시다.
다섯째, 다양한 가치 체계와 물질문명의 빠른 변화 속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하여 특별한 사랑과 관심으로 건강한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살도록 돕는 사목적인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또한 어렵고 소외되고 고통중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사목적인 특별한 관심으로 다가가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의 뜻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뜻만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으로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함께 세상의 빛이 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