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 위한 ‘영의 웰빙’ 추구”
지난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어수선한 일들이 많았던 느낌이다. 동남아 일대에서 일어난 지진해일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비교적 지진 안전지대라고 생각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의 영향이 뚜렷하게 감지되어 불안에 떨어야 했고, 대규모의 산불로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휴일 오후에 마당 한구석에서 한가로이 쬐는 올 봄의 햇살은 더욱 따스하고 반갑게 느껴진다. 이래저래 받게 되는 정신적 스트레스로부터 말끔히 소독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사회적 불안이 가중될수록 사람들이 더욱 안전을 갈구하고 자신들의 존재유지에 필수적인 것들을 더 많이 찾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안한 심리를 보상해줄 무엇인가를 찾게 되는 것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사회에 유행처럼 퍼진 용어중의 하나는 바로 「웰빙」 이라는 것이다. 공해와 사회적 스트레스로부터의 소극적인 방어차원이 아니라, 좀 더 건강하고 보다 나은 수준의 생활을 스스로 찾아 누리려는 적극적인 대응자세인 것이다. 아무 탈없이 오래오래 그리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망을 채워줄 것 같은 온갖 방법이 다 소개되고, 「새봄맞이 건강 프로젝트, 웰빙 라이프」 등등 그럴듯한 각종 문구가 쓰인 광고를 거의 매일 대하다시피 살아가고 있다.
하루는 화원에서 선물로 살 꽃을 고르다가, 맘에 드는 모양새는 아니지만 음이온을 방출한다는 식물에 나도 모르는 사이 손이 갈 때, 이 웰빙 문화라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우리네 삶에 파고들었는지 실감하게 된 적이 있었다.
쾌적한 환경에서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 상위개념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사는 듯하다.
그리스도인의 웰빙은 무엇일까? 웰빙이라는 것이 단순한 육체적 안락만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이 주시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고, 고통을 통한 성장이라는 말도 허공에 뜬 추상적인 단어가 될 뿐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기보다, 우선 하느님 나라를 구하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때 인 것 같다. 노화와 질병에 대비한 육체의 웰빙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영의 웰빙 또한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라는 교황님의 마지막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저격사건과 병상에서의 생활, 많은 병력, 고단한 업무, 그리고 기력이 다한 노쇠한 몸에도 불구하고 행복함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의 웰빙, 그리스도인의 웰빙을 살아가셨기 때문일 것이다. 2005년 새봄에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웰빙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조수정 <소피아.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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