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 느껴”
한국신학·철학 발전에 큰 기여
“젊은이 사목에 열정 가져야”
『더 훌륭한 분들이 많음에도 몬시뇰 임명의 영예를 안게 돼 감사드립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하느님께로 돌아가시기 전 남기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점에 더욱 남다른 감회가 느껴집니다』
「명예 고위 성직자」 선발 소식에 정의채 몬시뇰은 「명예」에 앞서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여든의 나이에 교황청으로부터 들려온 소식을 개인적 명예로 넘기기보다 거기에 담긴 뜻을 헤아리게 된다는 정몬시뇰은 근래 자신의 화두인 양 짊어지고 온 「젊은이 사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밝혔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젊은이는 그 자체로 주님이 허락하신 다양성의 보고입니다. 그 속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보물을 캐내 빛을 발하도록 하는 게 교회의 몫이라고 봅니다』
이런 정몬시뇰의 생각의 이면에는 총체적이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문화지형에 따라 바뀌는 삶의 형태를 인식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데 교회가 더욱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바람이 내재돼 있다.
『교회가 사이버 세계를 인식하고 대처하기도 전에 이미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곧 닥칠 미래를 앞당겨 인식하지 않으면 교회의 미래인 젊은이를 다 놓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힘을 합쳐 사목적으로 새로운 차원을 열어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정몬시뇰은 사제들의 미래지향적 사목 구상과 비전을 제시함에 있어서 0순위는 단연 「젊은이 사목」이라고 꼽는다.
『세상의 메커니즘 속에서 교회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런 영역을 찾아 앞서 나가야 교회는 물론 세상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몬시뇰은 미래를 보는 안목과 이를 담아낼 인프라를 준비해야 하는 게 교회의 몫임을 강조한다.
『젊은이들을 정신적 영성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나가는데 제가 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25년 12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정의채 몬시뇰은 1953년 가톨릭대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부산교구 초량·서대신동본당 보좌를 거쳐 로마로 유학,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가톨릭대 철학교수와 부학장, 대학원장, 총장, 서울대교구 관구신학원 원장, 서강대 철학교수를 지내는 등 후진을 양성하는데 평생을 헌신했다.
특히 한국 신학 발전에 크게 기여해 온 정몬시뇰은 200주년 사목회의 부위원장과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장,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초대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강대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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