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 빼앗고 염주 주자 불승 앞에서 던져버려
4) 조선인 막센시아
1612년 8월 6일의 금제령은 주로 슨뿌, 에도, 교토, 사카이, 아리마(有馬)에서 실행되었다. 아리마의 영주가 된 나오즈미(直純)는 1613년 불승을 데리고 아리마에 내려왔다. 영내의 전 주민에게 개종을 강요하고 백부 요안과 거기에 숨어있는 신부들을 추방하도록 명하였다.
영주의 둘째 부인 구니히메(國姬=이에야스의 증손녀)는 아리마 성에 내려오자 시녀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시녀들에게 무리하게 묵주를 빼앗고 불교의 염주를 주었다. 조선인 막센시아는 염주를 불승 앞에 던져버렸다. 부인은 대단히 화가 나서 그녀를 탑의 지하 기둥에 묶은 채 감금하고 8일 동안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9일 째 되는 날 겨우 오랏줄은 풀렸지만 소량의 빗물 외는 주지 않았다.
밤중에 막센시아는 고귀한 부인의 방문을 받았다. 훌륭한 음식을 가지고 왔는데 이것은 천국의 음식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녀는 얼마 후 옥에서 나왔지만 영적 충만으로 건강이 넘치고 있었다. 영주 부인은 감시인을 붙여 그녀를 다른 영주의 집에 보냈다. 조선인 막센시아는 자기의 생명을 하느님께 바치고 세상을 버린 표시로 삭발을 하였다.
이 해에 일어난 순교 사건 중에 아리마의 고급무사와 그 가족 8명의 순교는 신심회원 2만 명이 보는 가운데서 행해졌다. 이것을 본 기리시탄들은 너도나도 「마리아회」 「순교자회」에 들었다. 순교자들의 유해를 목숨 걸고 찾아와 찬미가를 부르며 장엄한 행렬을 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이에야스는 자기 외에 숭배의 대상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걸렸다. 드디어 전국적 금교령을 내리게 되었다.
5)조선인 귀머거리 마뉴엘
『슨뿌성의 이에야스는 1614년 금제를 발령하여 선교사를 추방하고 성당을 파괴하는 등 전국 박해를 시작하였다. 스루가(駿河=靜岡)에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귀머거리 조선인 마뉴엘은 공공연히 묵주를 목에 걸고 있었다. 이교도들은 그를 조소하며 기리시탄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처형될 것이라고 몸짓으로 알렸다. 마뉴엘은 흥분하여 얼굴을 붉히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기리시탄을 버릴 수 없다고 자기 목을 앞으로 내미는 자세를 하였다. 얼마 뒤 티에고와 동료 6명과 함께 마뉴엘은 포박되었다.
마뉴엘은 병신이라 하여 수일 후 감옥에서 쫓겨났다. 그 후 스루가 시내를 다니면서 희사를 얻어 그것을 감옥에 있는 동료들에게 넣어주는데 전념하였다. 다른 동료들은 고문을 받으며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양손가락이 잘리고 벌겋게 달군 쇠로 이마에 십자가 낙인이 찍혀 큰길로 끌려 다니다가 발목의 힘줄마저 끊어져 땅에 넘어진 채 방치되었다. 이들을 돌보지 못하도록 금지되었다. 마뉴엘이 이들을 데리고 나환자 암굴로 가서 상처를 치료해 주었지만 2명은 그날 밤 숨을 거두었다. 살아남은 자는 동네를 기어 다니면서 걸식했다. 마뉴엘은 성사를 받기위해 동료 4명을 데리고 오사카까지 걸어가서 나가사키로 갔다. 지금은 나가사키의 「자비의 형제애」에 있는데 이들을 돌보고 있는 자는 조선인 귀머거리 마뉴엘 이었다』
모레혼 신부의 보고서이다.
박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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