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감시·비평할 깊이도 필요”
요즘 정말 많이 문화를 이야기한다. 무엇에든 문화 개념을 연관시키면 가장 현대적인 추세에 발맞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한 가지 예로, 대학에서 독어독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등의 학과들이 언제부턴가 독일문화학과, 프랑스문화학과 등으로 이름을 바꾸고 있다. 문화라는 말을 붙여야 학문의 시대적인 효용성이 두드러지고, 대중적인 주목도 더 많이 끌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왜 이렇게 문화에 주목하는가? 현대 사회가 문화의 시대가 된 것과 관련해 대략 다음과 같은 배경을 설명한다.
첫째, 정치 경제적 이데올로기 시대의 쇠퇴이다.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민주주의-공산주의의 냉전시대를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전체주의 내지 획일주의에 대한 큰 반감을 지니게 되었다. 국가와 민족, 특정 이데올로기라는 전체적인 기치 아래에서 개별적 가치들이 무시당하고 훼손당하는 문제를 경험한 것이다. 이제 전체적 이념들이 해체되면서 사람들은 개인적인 삶의 가치에 보다 주목하게 되었다. 획일적이고 공허한 이데올로기보다는 실제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관심을 지니게 되었고,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식을 표현하고 있는 문화가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이다.
둘째, 과학기술 문명의 발전이다. 20세기 이후 놀랍게 발전한 과학기술은 여러 면에서 인간의 삶을 변화시켰다. 이전 시대에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내용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모습이 되었다. 첨단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보다 복잡하고 다양하게 만들고 있고, 이런 흐름 속에서 문화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문화의 대중화이다. 사실 근대 이전만 해도 문화적인 삶을 본격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것은 특정 계층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전반적인 경제 수준의 향상과 사람들의 삶의 질에 대한 기대 수준이 향상되면서, 문화적인 삶의 향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문화적인 삶을 기대하고, 또한 누구에게나 문화적인 삶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다양한 문화의 교류이다. 현대 사회의 또 하나 특징은 개방화 시대라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자주 듣게 되는 글로벌 시대라는 표현도 이것과 관련 있다. 전통적인 시대에는 지역간의 교류가 원활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각 지역 문화들이 개별적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의 발달, 특히 인터넷이라고 하는 첨단 소통 공간의 보급에 힘입어 인류는 시간적 지역적 차이가 무의미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이처럼 활발할 교류는 다양한 지역 문화들 사이의 교류로 이어졌고, 그 결과 문화의 형태는 보다 다양하고 풍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배경으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보다 초점을 맞추어야 할 문제는 이렇게 도래한 문화의 시대를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시켜나갈 것이냐는 점이다.
문화는 그 시대의 복합적인 상황을 반영하여 형성된다. 그리고 문화는 순기능도 하지만 분명히 역기능도 한다. 문화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드느냐, 아니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느냐는 온전히 그 시대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다. 문화에 대해 얼마만큼 객관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지니느냐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감시하고 비평할 수 있는 깊이가 필요한 것이다.
오지섭 <서강대 종교학교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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