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단장=박일영)은 한국학술진흥재단 기초학문육성 사업비를 지원받아 지난 3년간 문화, 신학, 역사, 사회과학 등 총 4개분야에 걸쳐 한국 근현대 역사 안에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제 분야를 연구, 검토해왔다.
사진은 4월 9일 열린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 심포지엄에서 신학분야 발제 후 종합토론하는 모습. 왼쪽에서부터 최경선, 이성우, 박문수, 강영옥 박사.
■“문화, 신심행위에 영향 미쳐”
한국 가톨릭 신심행위와 그 역사 문화적 배경 III - 최경선 박사
1962년부터 현재까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국내외 여러 사건들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 시기에 두드러졌던 신심행위는 성모신심 및 특별 세미나 혹은 모임 형태로 표현됐다.
특별히 성모신심은 당시 한국에 들어와 있던 레지오 마리애와 푸른 군단 뿐만 아니라 새로 도입된 성모신심단체들을 통해 활발히 퍼져나갔고 레지오 마리애 경우 2003년 진출 50주년을 맞아 역사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또 여러 행사를 경험한 한국 교회는 특별 세미나나 모임을 통한 신심 행위가 많아졌다. 꾸르실료 운동이나 포콜라레 등 다른 나라에서 도입된 신심 운동도 이런 현상에 한몫했다. 이러한 단체를 비롯 직능별 단체들의 조직도 계속되어 1998년 현재 전국 단체만 28개에 이른다. 이외에도 나주 성모상, 상주 데레사 등 사적 계시 문제와 이에 대한 논쟁이 계속됐다.
한국교회 순교자 신심은 1984년 103인 성인 탄생 후 순교자와 성인에 대한 관심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으며 성지 개발도 활기차게 진행됐다.
이 시기에는 신자들이 피정이나 성지순례 등에 참여하는 일이 더욱 많아지는 변화가 있었고 경제 사정이 향상되면서 해외 성지 프로그램들도 실시됐다. 또한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기도회가 열렸다.
이러한 신심 행위의 역사적 배경은 「정치적으로 불안정 했던 국가」, 「현대화 작업과 변화의 과정을 거쳐야 했던 교회」 그리고 「한세기를 끝내며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던 사회적인 분위기」 등의 요인으로 모아진다.
결론적으로 한국교회의 신심행위는 한국 역사와 문화에서 영향을 받으며 역사나 문화에서 동떨어진 채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유기적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 심성 근저에 자리한 문화가 신심 행위에 꾸준히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대 전임연구원 교의신학)
■“주체적 성서공부로 의식 변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성서운동’과 한국 가톨릭 교회의 ‘근대화’Ⅱ-이성우 박사
한국 가톨릭 교회의 성서에 대한 관심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결정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주교회의는 「계시 헌장」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1965년 2월 성서위원회를 독립 위원회로 설립하고 1968년 2월 교황청 성서위원회와 세계 성서 공회 연합회가 공동 작성한 원칙하에 대한 성서 공회와 「신구교 성서번역 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렇게 추진된 공동 번역 사업은 1971년 신약성서, 1977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합본의 발간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러한 성서의 우리말 번역은 19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한국 가톨릭 교회 안의 성서읽기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즉, 모국어로 번역되고 인쇄된 성서를 소유할 수 있을 때 개인은 성서를 직접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신앙인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때 성서의 모국어 번역 및 출판은 성서공부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 성서 보급과 성서 교육을 통한 「성서 운동」은 7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의 「가톨릭 성서모임」을 시작으로 「어버이 성서모임」, 「성서 40주간」 등 프로그램이 이어졌고 수도회 교구별로 다양한 성서 모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와 함께 성서 읽기 및 쓰기와 성서 교육이 매우 활성화 됐다.
한국교회 성서운동의 특징은 성서 읽기와 공부가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에 의해 주도됐다는 것이다. 성서공부는 수도자와 평신도(성사를 거행할 권한이 없는)가 할 수 있는 최적의 주체적인 신앙 행위가 되었고 곧 성서운동은 수도회와 평신도 운동으로 커 나갈 수 있었다.
우리말 번역으로 누구나 성서를 읽고 공부할 수 있는 토양은 한국 가톨릭교회 근대화에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성서를 통한 근대화는 의식 차원의 근대화를 불러왔다. 수도자와 평신도에 의한 성서 읽기와 성서 공부의 활성화를 가져왔고 주체적인 성서 읽기와 성서 공부를 통한 의식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가톨릭대 전임연구원 교의신학)
■“여성문제서 사회정의까지 모색”
한국 가톨릭 여성단체들의 현황과 특성 - 강영옥 박사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서는 1962년 세계 가톨릭여성협의회장이 한국을 방문, 노기남 대주교에게 여성연합회의 필요성을 일깨웠고 당시 성모회장으로 활동하던 김예랑 여사 중심으로 여성 신자들이 모아지면서 가톨릭 여성연합회가 결성됐다.
초기에는 여성의 권리 주장이나 여성 의식을 내세우지 않았으나 차츰 여성 교육으로 이어졌고 가톨릭 여성들의 자질 향상을 위해 사회의식 경제문제 여성 의식을 깨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및 성서공부 신앙강좌 교양 강좌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가톨릭 여성연합회의 결성으로 한국 교회 안에 여성단체가 처음으로 태동한 이후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사회 운동이 적극 전개되면서 이러한 활동의 연장에서 농촌 여성을 위한 「한국 가톨릭 농촌여성회」가 1977년 결성됐다. 또 1985년에는 도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한 「막달레나의 집」이 시작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여성적 이슈들을 가지고 다양한 가톨릭 여성단체들이 등장하는데, 이를테면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한국 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산하 여성분과와 가톨릭 여성신학회, 한국가톨릭 여성연구원 등이다.
2000년 10월 탄생한 여성소위원회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라는 공식적 기구 안에서 처음으로 여성 문제를 다루는 기구로 탄생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각 단체들의 결성시기와 창립 동기 활동내용과 미래 전망에 따라 그 특성들은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가톨릭 정신으로 온전한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드러난다.
가톨릭 여성단체들은 여성 개인의 권리주장에는 목소리가 약하지만 남녀 불평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 구조악에 대해서는 헌신적으로 대처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그 지점이 일반 여성 단체와 가톨릭 여성 단체가 구별되는 것이다. 가톨릭 여성 단체들은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지평을 가지고 여성 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 지구평화 우주적 통합까지 모색해 나간다.
(가톨릭대 전임연구원 여성신학)
■“사회복지발전에도 선교는 약화”
근대적 사회사업의 정착과 재도약을 위한 가톨릭의 정체성 모색 - 박문수 박사
인성회 출범에서 2000년까지
1975년 이후 가톨릭 사회복지의 특징은 질적 양적으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음에도 전체 종교 사회복지와 국가 사회복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불교 및 시민 단체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가톨릭의 상대적 비중이 낮아졌고 또 국가의 가톨릭에 대한 시설 위탁이 증가, 재정을 국가에 기대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국가 주도의 사회복지가 기존 종교 사회복지가 갖는 선교 기능을 약화시켰다.
이 시기의 가톨릭 사회복지는 자립의 토대 위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기반은 1975년 설립된 인성회로부터 시작됐는데 여기서는 제반 긴급 구호와 자선활동 복지사업 개발 활동, 사회의식 계발 활동을 관장했고 산하 각 교구 위원회를 통해 가톨릭 사회복지 활동을 통합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인성회는 1991년 10월 주교회의 사회복지 위원회로 개칭됐고 한국교회의 사회복지 활동을 총괄하고 협의 조정하는 역할을 계속 담당했다. 또 1992년 10월 부터는 해외 가난한 나라를 원조하는 기능도 맡았다. 한편 분야별 사회복지 활동을 담당하는 전국적 협의기구도 많이 늘어났다. 1995년 「한국 가톨릭 장애인 복지 협의회」가 생겨난 것을 비롯 「한국 가톨릭 사회복지과 협의회」 등이 결성됐다. 또 인권 복지가 가장 두드러진 활동 중 하나로 부각되기 시작했고 해외원조도 활발해 졌다.
이때의 가톨릭 사회복지 특징은 인권복지와 함께 자립의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성격이 시혜적이고 사회사업적인 차원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천착하는 차원으로 전환했고 교구 및 수도회들이 국가로부터 복지 시설을 위탁받는 빈도도 늘어났다. 통합적 사회 복지적 노력도 활발해 졌으나 정체성을 약화시키는 면들도 커졌다.
전체적으로 한국 사회의 여건이 충분치 않았던 시점에서 가톨릭의 기여는 상대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으나 역할 정체성의 위기로 교회가 국가의 사회 복지와 이웃 종교와의 관계에서 새 방향을 모색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가톨릭대 전임연구원 사목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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