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한 전통 바탕으로 점진적 개혁 추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으로 거듭날 것 촉구
낙태·안락사·복제인간·유전자 변형 등 풍조 질타
경직된 전통주의 등 배격하고 원천으로의 회귀 강조
새교황으로 선출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1927년 독일 바이에른주 남동부 마르크틀에서 경건한 가톨릭신앙인의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라이징 신학대학과 뮌헨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51년 3살 위의 형과 함께 뮌헨대교구 사제로 서품되었다. 1953년 신학박사학위, 1957년 교수자격을 취득한 후 1977년까지 프라이징, 본, 뮌스터, 튀빙겐, 레겐스부르크대학교 신학부 교의신학교수로 활동했다.
20여년간 교수로 활동하는 동안 라칭거는 뛰어난 저술과 강연으로 명성을 얻으며 당대 정상급 신학자로 활동하였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에서 공의회신학자로 활동하였다.
1977년 뮌헨대교구 교구장으로 임명되었고, 4개월 후에 추기경에 서임되었다. 1982년부터 교황청 신앙교리성장관으로 봉직하다가 제265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동안 라칭거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신앙 어제와 오늘」과 같은 저서 외에도 기초신학과 그리스도론, 구원론, 성사론, 마리아론, 종말론, 토착화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저술을 남겼다.
라칭거가 가장 심취했던 분야는 교회론이었다. 그는 박사학위논문에서 교회에 대해 고찰하였고, 변화된 세상과 교회를 탐구하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정신으로 거듭나야 할 현대교회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1969년에 출판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은 현대의 교회론 저서들 가운데 백미로 꼽히는 빼어난 저작으로 평가된다.
라칭거의 신학사상은 한마디로 「전통의 옹호」라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 확고한 전통을 바탕으로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라칭거사상의 핵심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가 겪은 급격한 개혁의 혼란을 보면서 신학자로서 라칭거는 온건한 개혁을 확신하게 된다. 그 후 교구장과 신앙교리성성 장관으로서 오랫동안 가톨릭신앙을 지키는 책임부서를 맡으면서 가톨릭전통을 굳게 옹호하는 수장으로 활동하였다.
역사는 언제나 전통과 개혁의 변증법 속에 발전한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기인 1800년대 말은 인류역사상 모든 분야가 급변했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 군주제도가 민주제도로 변하던 시기였고, 경제적으로 봉건지주제도가 자본주의로 변하던 시기였으며, 사회적으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던 시기였고, 사상적으로 하느님과 신앙중심에서 자유와 개인중심으로 변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가톨릭교회는 전통을 확고히 옹호하는 방어정책을 추진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떠나가게 되었다. 가톨릭교회로부터의 이탈은 1900년대 들어와서도 계속되었는데, 칼 라너(1904~1984)와 같은 개혁적인 신학자들은 전통의 옹호보다 현대세계에로의 적응에 초점을 두고 교회개혁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개혁적인 학자들의 분석과 처방을 받아들여 교황 요한23세(1958~1963)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개최함으로써 세상변화의 적응에 초점을 맞추는 개혁을 주도했던 것이다.
「현대세계에로의 적응(aggiornamento)」이라는 공의회정신은 이후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에 의해 계속 구현되었지만, 일부 급진적인 개혁의 혼란도 만만치 않았다. 개혁이라는 구호아래 「진보와 보수」, 「좌와 우」, 「개방과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서로 대립하고 분열되었던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는 다시 전통의 옹호에 초점을 맞춘 분이었다. 라칭거는 요한바오로2세와 함께 전통의 옹호를 평생의 과업으로 생각했다. 라칭거는 세상변화 앞에 교회의 일부구성원들이 개인주의적인 급진적 비약을 계속함으로써 교회전통이 붕괴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물질과 감각에 물들어 정신적인 가치를 멀리하고 있다. 특히 극단적인 개인과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신앙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신앙을 외면하는 현실을 진단하면서 라칭거는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전통적인 신앙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윤리적인 위기도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성윤리가 무너지고 있다. 동성애, 낙태, 혼전성관계, 자위행위, 피임 등이 무분별하게 행해지고 있고, 그밖에도 자살과 안락사와 같은 생명경시, 시험관아기나 복제인간, 유전자변형과 같은 자연질서를 거역하는 일들이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풍조를 질타하고 있다. 하느님이 부여하신 자연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참된 행복의 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사제, 수도자들의 위기도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성소의 격감, 사제와 수도자들이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 환속 등의 문제와 함께 여성사제, 사제독신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라칭거는 깊은 내면의 영성을 쌓음으로써 성소의 소중함을 보존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가톨릭전통에 비추어 여성사제서품을 반대하고 있고, 독신의 가치를 강조하면서 사제독신폐지 주장도 반대하고 있다.
또 독재와 같은 정치적 억압상황을 바꾸는데 적극적인 폭력까지 인정하는 급진적인 해방신학사상이나 사회개혁사상을 배격하면서 비폭력 저항을 통한 사회변화를 촉구하고 있고, 종교다원주의와 같은 현대사상도 반대하고 있다.
라칭거는 신유물론적 사고로 물든 개혁주의나 경직된 전통주의 모두를 배격하고 가톨릭교회가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잘못된 쇄신을 지적하면서 원천으로의 회귀, 그리스도교 불변의 진리인 십자가와 사랑으로의 회귀를 촉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첫째, 성체성사 중심의 교회, 둘째, 주교와 교황을 중심으로 일치된 교회, 셋째, 성서와 전통이 토대가 된 교회를 강조한다.
라칭거의 사상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개혁적 신학자들로부터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성서와 전통에 충실히 머물고 있는 그의 사상은 무분별하기 쉬운 오늘의 섣부른 개혁에 기준점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현대교회가 다양한 의견들에 귀 기울이고 혜안을 얻어 이 시대에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새 교황과 함께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전광진 신부(대구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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