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는 웬만해서 웃는 법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웃을 줄을 모르는 사람 같기도 했다. 사진이나 텔레비전을 통해서 본 냉철한 얼굴은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었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수면부족으로 인해 푹 꺼진 눈은 차가운 얼굴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이탈리아의 몇몇 신문들이나 진보적 성향의 교수들은 그를 「장갑차」라고 부른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분의 차가운 이미지 때문에, 나는 그 소문이 정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우리의 새 교황님이 되신, 당시는 추기경이셨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런 이미지가 한 순간 뒤바뀐 만남이 있었다. 역시 로마 유학시절이었다. 유학생활 중 공부와 시험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은 소외와 단절이었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소심함 때문에 도무지 타인과 소통할 줄을 몰랐던 나는, 너무도 완벽한 「광야」를 체험하고 있었다.
광야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나는 광야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체험 때문인지 지금도 「광야」는 누구보다 쉽게 설명하는 편이다(아니, 혼자 그렇게 생각한다). 구약성서에서 광야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만나 사랑에 빠진 「첫사랑의 장소」라는 전통을 거듭 제시하는데, 모든 것이 단절된 상태에서야 비로소 인간은 「단독자」가 되어 자기 자신과 하느님을 진심으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지칠 대로 지쳐, 모든건 다 내 죄지, 하는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바티칸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바티칸 앞의 즐비한 상점가에서, 검은 수단을 입고 걸어오시는 노사제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다.
바티칸 근처에 수단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제들은 너무도 많았고, 더구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상점가에서 어느 한 사람이 눈에 들어올 리는 만무했는데, 그분이 유독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마치 꼭꼭 씹듯이 걸어오시는 듯한 특이한 걸음걸이와 그날 아침 거울에서 본 내 눈과 똑같은, 피곤에 지친 듯한 눈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그 다음에 발생했다. 그분과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나는 정말이지 내 눈을 의심해야 했는데, 그분이 그토록 유명한 라칭거 추기경님이셨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본 예의 차가운 표정 그대로여서 금방 알아보았지만, 수행비서도 하나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나오신 것일까, 비슷한 다른 분이겠지, 하는 생각에 선뜻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러나 놀라움과 반가움은 그대로 전달되는 것인지, 내 생애 영원히 잊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그분이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알아봐주시고 미소를 지으시며 이탈리아말로 「챠오」(안녕)라는 인사말까지 건네신 것이다.
라칭거 추기경님을 뵈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는데, 동양에서 온 꾀죄죄한 젊은 수녀에게 미소와 자상한 인사까지 건네시니, 예의 차가움이나 냉정함은 그 자리에서 증발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순간, 나의 단순 무식함과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식의 비합리적 충정이 여실히 발휘되면서 이내 마음을 굳혔다. 추기경님의 영원한 팬이며 아군이 되겠다는….
이번 교황선거 내내, 라칭거 추기경님이 교황으로 선출되시기를 기도를 했던 것은 그런 나의 단순한 기질과 또 추기경님들 중, 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그분 한분이시기에 나온 필연적 결과이기도 했다(글쎄 새 교황님과 내가 「아는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분이 얼마나 이 시대에 교회가 가야할 길에 대하여 정직하게 고민해온 훌륭한 학자이셨는지를 이미, 그분의 여러 논문들과 인터뷰를 통해 알고 있었다.
대세처럼 여겨지던 신(新)신학 조류에 그토록 강건하고 철벽같은 자세로 교회의 전통적 입장을 고수하기란, 사실 목숨을 내놓는 용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보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설상가상으로 강경 보수세력의 수장이 개인적인 탐욕과 설득력 없는 밀어붙이기로 사람들을 몰아갈 때면, 지칠 대로 지친 민중은 눈을 돌릴 수밖에 없게된다. 그러나 이기적이지도 않고 꽉 막힌 것도 아닌데, 지켜야할 것, 반드시 수호해 내야할 것이 있기 때문에 자청하여 보수노선에 서는 사람들도 있다. 베네딕토 16세 새 교황님의 지난 생애와 업적을 검토한다면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러한 용기와 노력, 그리고 헌신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다음날 그 놀라운 사건을 같은 반 학우들이던 신부님들에게 말했더니 반응이 어째 묘했다. 쯧쯧, 얼마나 행실이 꾀죄죄했으면 그분이 그런 표정을 짓고 가셨겠느냐,는 거였다. 또 염장을 지르는군, 어이가 없었지만 뜻밖의 행운에 대한 당연한 시샘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런데 거의 8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유독 내가 튀어보였을 이유가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러분들, 일부러 초라한 행색으로 바티칸에 가시면 안 됩니다. 그런 요행이 다시 생길지 저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