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전도사로 활동 추방후 재잠입해 순교
1) 게이쵸 금령과 국외 추방
은퇴한 대장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3년 12월 22일 밤 돌연 전국적 기리시탄 금교령과 선교사 국외 추방령을 내렸다. 불승 스우덴이 이에야스의 명을 받아 작성 하였다. 이를 선교사 추방문(伴天連追放文) 또는 게이쵸 금제(慶長禁制)라고 한다. 이 금제는 1612년 8월 6일의 금령과 더불어 약 260여 년간 에도막부의 기리시탄 금제의 조법(祖法)이 되었다. 이를 실천하는데 많은 불승들이 기용되었다. 신사와 불교는 정법이고 기리시탄은 「사교」요 「천하의 적」이며 「침략종문」이라는 배척운동과 교화설법을 전국적으로 행하였다.
오쿠보 다다치카(大久保忠隣)는 선교사 추방의 총 책임자로 기용 되어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선교사 국외 추방과 교회당 파괴에 착수하였다. 1614년 2월 11일 교토에 있는 신부들은 나가사키로 가서 각자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후시미와 오사카에도 같은 명령을 내렸다. 신부 일행은 4월 중순 나가사키에 도착하였다. 모레혼 신부를 비롯한 예수회,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아우구스티노회 회원과 교구 사제를 합하여 62명은 마카오에, 36명은 마닐라에 동년 11월 추방되었고 그 외의 신부는 잠복하였다.
조선인 가이오
1614년 이에야스의 추방명령은 다카야마 우콘(高山右近)에게도 내려졌다. 일본의 근대 종교가로 추앙을 받고 있는 우콘은 히데요시의 금령으로 자기 영토에서 추방되어 마에다(前田) 영지의 가나자와(金澤) 교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가나자와 교회에는 우콘과 그의 가족들, 교토의 동정녀수도회의 창립자 나이토 쥴리아의 오빠인 나이토 도쿠안(內藤德庵), 그리고 전도사로 일하고 있던 조선인 가이오(Caius)가 있었다.
로드리게스 지람(R. Giram) 신부의 서한에 의하면 「신앙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회의 지위를 박탈당한 영웅적 우콘은 예수회의 수도예비자 조선인 한사람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 조선인 가이오는 일본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 자진하여 영주의 봉사자로 추방되는 길을 택하였다」. 이어 「가이오는 1571년에 조선에서 태어났는데 양친은 그를 사원에 바쳤다. 불승으로서, 은둔자로서 동굴생활을 하고 있던 중, 1592년 포로가 되어 교토에 끌려왔다. 그의 주인은 애정 깊은 사람이어서 교토의 어느 사원에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결코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가 없어 고뇌에 빠져 병에 걸렸다. 가이오는 다시 전 주인을 찾아가 기리시탄을 소개받아 교토의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예비수사로 예수회 수도원에서 생활의 모범을 보였다. 일본인 뿐 아니라 3년 전에 끝난 전쟁으로 많은 조선인이 있어 그들에게 자국말로 설교를 하여 우리들로써는 큰 행복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가이오는 예수회의 전도사로서의 일을 오사카에서 시작하여 사카이와 가나자와에서 봉사하다가 추방의 무리에 합세하였다. 그 후 가이오는 다시 일본에 잠입하여 순교하게 된다.
박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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