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 학술심포지엄(3)-역사분야
「근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단장=박일영)의 학술 심포지엄 역사분야의 연구 논문 중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전임연구원, 조직신학) 박사의 「현대 한국 가톨릭교회의 사회 정의운동과 선교정책」, 장정란(가톨릭대 전임연구원, 동서교류사) 박사의 「외국 선교회의 한국 선교-독일 베네딕도회의 왜관시대」, 노용필(가톨릭대 전임연구원, 한국사학) 박사의 「가톨릭대학의 사제 양성교육」 논문 개요를 요약, 정리한다.
■ 현대 한국 가톨릭교회의 사회 정의운동과 선교정책
황종렬 박사(미래사목연구소 전임연구원.조직신학)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통해 신앙실천에 사회정의 통합
한국 가톨릭교회는 해방 이후 60년, 지역교회의 틀을 형성한 이후 40년 동안 교회 안팎에서 형성되어 온 현대 세계의 시대정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가운데 자기의 정체성을 정립해 왔다. 이 과정에서 특히 1962년부터 1965년 사이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한국 교회의 선교 내지 복음화 실천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제도적 현대성을 갖추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정신적 현대성을 확립할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하여 한국 가톨릭교회는 민족과 함께 하느님의 생명의 다스림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새로운 선교 시대를 열면서 민족과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발생시키는 한 인자로 작용하는데, 이 가운데 주목할 것 가운데 하나가 1970년을 전후하여 명시화하기 시작한 사회 정의를 위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강화도 심도직물에서 일하던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노동조합을 탄압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교회가 교회 이름으로 사회 불의에 맞서 극복할 계기를 마련해 가게 되었다.
두 번째는 권력형 부정부패에 맞서 원주교구가 1971년 10월에 시도한 교구 단위의 저항이다. 이것은 사회 정의를 교구 복음화 내지 선교 안에 통합해 들이는 안목 없이 이룰 수 없는 사목적 결단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한국 가톨릭 역사상 매우 중요한 전기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어서 지학순 주교 사건을 통하여 교회의 지도자가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투옥된 것은 사회 정의를 사목에 통합한 교회 지도자가 국가 권력에 의하여 탄압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창립을 불러들이면서, 오히려 교회로 하여금 사회 정의를 자신의 복음화와 선교에 왜 그리고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를 터득할 가장 결정적 계기가 되어 주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중요한 인자 가운데 하나인 평신도의 참여를 사회정의 안에서 자신의 선교 내지 복음화에 통합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 구도다.
한국 교회는 성직계의 독단적 권위 행사가 교회를 정체시키고 반생명적이게 만들 수조차 있다는 것을 민족의 역사를 통하여 확인해 왔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치고 사회 정의를 자신들의 신앙 실천에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신앙을 주체적으로 실현할 기회를 얻으면서, 성직계에 의한 반민중적, 반민족적, 내지는 민족을 복음화 투신에서 소외시키는, 형태의 행위에 직면하여 그 정당성을 질문하여 갈등 구조를 형성할 역량을 일정하게 갖추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한국 교회는 세계 교회의 신앙 살이 비전이 지역 사회에서 어떻게 「복음」으로 작용할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증거하는 한 사례를 낳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 구성원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는 신학과 영성, 사목의 비전을 체득하는 것의 중요성은 물론, 이러한 비전을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선교와 복음화가 민족의 생명과 관련하여 갖게 될 질적 관계를 숙고할 근원적인 과제를 확인시켜 준다.
■ 외국 선교회의 한국 선교-독일 베네딕도회의 왜관시대(1952~현재)
장정란 박사(가톨릭대 전임연구원.동서교류사)
“시대변화 읽으며 선구적 역할해”
성 베네딕도회의 왜관시대는 원산교구가 폐쇄되며 부산.대구로 흩어졌던 수도자들과 북한 공산정권으로부터 추방당했던 외국인 수도자들이 귀환하여 수도생활을 재개하며 시작되었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며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자 이 정권은 종교탄압정책을 추진하였다. 그 후 1948년 9월 9일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종교 탄압이 본격화되었으며 베네딕도회도 그 대상이었다.
특히 덕원수도원 등의 외국인 성직자들은 「죽음의 행진」을 겪으며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생존자는 모진 고초 후 독일로 송환됐다. 그 후 1951년 미국을 방문중이던 상트 오틸리엔의 슈미트 크리소스토모(Schmid, Chrysostomus, 金時鍊) 총원장은 미국에 체류 중이던 스위스 출신 전 덕원수도원의 비테를리 디모테오(Bitterli, Timotheus, 李聖道) 신부를 한국에 다시 진출시켜 월남한 덕원과 연길교구의 신부, 수사, 신학생들을 모아 수도원을 설립하고 동시에 한국 베네딕도회 장상으로 임명하였다.
비테를리 신부는 월남한 베네딕도회원들을 돌보고 있던 대구교구장 최덕홍(崔德弘) 주교의 제의로 6월부터 왜관과 낙산에서 본당사목을 시작하였는데, 이 해 7월 6일 비테를리의 몬시뇰 착좌식 거행을 시점으로 왜관시대를 열게 되었다. 2005년 3월 현재 왜관수도원 소속 성 베네딕도수도회 수도사는 총 148명에 달한다. 종신서원자 109명(성직수사 49명, 평수사 60명), 유기서원자 18명, 수련자 5명, 그리고 청원자 15명으로, 이들 중 72명은 분원들과 본당, 수녀원 지도, 해외 유학, 선교파견 등으로 본원 밖에서 생활하고, 76여명이 왜관 본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기본생활은 크게 기도와 노동(Ora et Labora)이다. 선교활동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행해지며 선교방법 역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여러 분야에서 지속적인 선교활동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왜관에 분도출판사와 인쇄소를 설립하여 문서선교에 주력하였다. 아울러 문서선교의 선도자답게 베네딕도 미디어를 창설하여 현대적 기술 매체를 통한 문화선교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0세기와 미래 인류에게 최우선의 화두인 노동, 의료, 노인복지 등 사회복지선교 분야에서도 베네딕도회는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수도회의 본래 한국진출 목적인 교육사업도 지속하여 청소년교육 뿐 아니라 성인교육, 수도자 교육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베네딕도회 왜관시대 선교활동의 특성 내지 우수성은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미리 읽음으로써 선교의 선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교회가 언제, 어떤 일을 해야하며 어느 방법으로 그 일을 수행해야 하는가를 시의적절하게 판단하고 실행함으로써 한국 가톨릭의 선교활동을 선도하며 그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뜻이다.
■ 가톨릭대학의 사제 양성교육
노용필 박사(가톨릭대 전임연구원.한국사학)
“신학교 운영에 아낌없는 지원을”
1970년대, 가톨릭대학은 사제양성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양성에 있어 3가지 방향의 큰 변화를 맞는다. 첫째는 대학원 교육이 대폭 강화된다는 점이고, 둘째는 신학부와 관구 신학원이 분리됨으로써 신학대학의 교수신부와 신학원의 지도신부를 분리하여 효율적인 사제 양성 교육에 힘쓰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셋째는 신학 교육을 완전히 개방하여 남성 평신도는 물론 여학생들도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는 점이다.
1980년대에는 수업 연한을 3학기 연장하여 교육시키고 교구를 중심으로 한 사목 실습 기간을 약 6개월 두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부제들이 6개월간의 본당사목실습을 하도록 함으로써 2년간의 연장교육기간이 생겼다.
1990년대 들어와 이루어진 가톨릭대학의 사제 양성 교육에 있어서 특징은 다음의 3가지 점에 있다. 첫째는 사목 영성 강화에 중점을 두고 대학원 중심으로 7년제 교과 과정이 시행되었다는 점이며, 둘째는 사회에 직접 나가 젊은이들을 위한 현장 봉사를 시도하고 있었다는 점이고, 셋째는 기숙사 건물을 기준으로 삼아 자치 기구를 구성하고 소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이후 가톨릭대학이 1992년에 이르러 성심여자대학과의 합병을 통해 종합대학교로 발전하면서 가톨릭대학교로 비로소 교명이 바뀌게 됐다. 이후 종합대학에서의 교육이 신학생들에게 어떠한 점에서 좋은가를 조사한 결과, 인성 교육에 큰 도움이 된다, 평신도와 함께 공부하게 되므로 평신도를 잘 이해하고 이들과 함께 같이 일하게 될 때 잘 융합될 것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꼽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단지 이상적인 지향으로서만 제시될 수 있을 뿐, 모두가 그대로 구현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리가 뒤따를 수밖에는 없는지도 모른다.
종합 대학 안에서의 사제 양성 교육이 인성 교육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만 하더라도, 과연 「종합대학 안에서의 신학생 교육은 신학생들에게 남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며, 그 시대의 문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것으로 반드시 귀결되지 않을 수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학생들이 평신도와 함께 공부하게 됨으로써 평신도를 잘 이해하고 같이 일하게 될 때 잘 융합될 것이라는 기대 역시 기대 그 자체로써만 있을 뿐이지,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대단히 의심스러운 대목들이 적지 않다. 덧붙여 컴퓨터의 보급 등으로 순진무구한 신학생들이 전혀 무방비한 상태로 노출되어 「세속화될 위험이 클」 확률은 대단히 높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질 좋은 사제 양성의 여하가 교회의 생사를 결정짓는 심장의 기능임을 깨달아, 선진 각국의 예에서 교훈을 얻어 막대한 재정의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신학교 운영에 요청되는 인적, 재정적 후원을 아낌없이 투입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의 장래가 더욱 밝게 보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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