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루에 넣어 고문해도 배교 안하자 국외추방
조선인 박 마리나 수녀
일본 최초의 여자 수도회는 교토(京都)에서 1602년에 쥴리아 나이토(內藤)를 회장으로 멘시아 오오토모 등 5명의 회원으로 창립되었다. 오르간티노 신부와 모레혼 신부의 지도로 회칙을 만들고 공동생활을 시작하여 청빈, 정결, 순종의 서원을 하였다. 1614년에는 20명의 회원이 있었고, 그 중에 조선인 박 마리나가 있었다. 마리나 박(1573~1636)은 조선의 양반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교토에 끌려와 1606년 세례를 받고 6년 후에 생애를 하느님께 봉헌하며 자신의 전 재산을 수녀회에 기증하였다.
1614년 금교령이 내려졌을 때 예수회 연보에 「포졸들은 우리들의 교회 옆 동네에 있는 대단히 고귀한 부인 쥴리아를 비롯하여 20여명이 모여 수도 생활을 하고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포졸들은 이들을 자루에 넣어 매달아 교토 시내를 다녔다. 엄동설한에 이틀이 지나도 배교자가 없었다. 이들이 의외로 신분이 높은 것을 알고 추방으로 결정되었다. 박 마리나와 동료 8명은 모레혼 신부와 다카야마 우콘, 조선인 가이오 등이 마닐라로 추방될 때 함께 추방되었다.
예수회 필리핀 관구 1636년도 연보에는 「박 마리나는 다른 수녀들과 함께 자루에 넣어져 치욕적인 고문을 잘 견뎌내고 돌아왔을 때 서투른 일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지켜 죽기마저 희망 한다』고 하였다. 마닐라에 추방된 후로 하느님은 여러 가지 병으로 그녀를 시험하였다. 특히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그것을 인내로 견뎌내고 도리어 그 부자유를 하느님께 감사하였다. 임종이 다가오자 봉사하고 있던 모니카에게 『모니카여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하게 나를 맞이하러 오시는 쥴리아가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창립자 쥴리아의 출현을 보았던 것이다. 천국의 방문에 위로되어 박 마리나는 1636년 5월 25일 밤 12시를 조금 지나 64세로 미소를 띠며 편안히 잠들었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조선인과 모레혼 신부
여기서 베드로 모레혼(1562~ 1639) 신부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회 신부 모레혼은 1590년 일본 선교사로 나가사키에 상륙하였다. 때마침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끌려 온 많은 조선인 포로들을 신앙으로 인도한 따뜻한 아버지이며 보호자요 지도자였다. 특히 조선인 가운데 빈센트와 가이오는 예수회 회원으로 순교까지 하여 일본 205위 복자에 올랐다. 오타 쥴리아도 모레혼 신부로부터 세례와 영신지도를 받았다. 더욱 쥴리아를 유럽에까지 하느님의 훌륭한 증거자로 소개하였다. 이 외에 이름 없는 많은 포로 조선인들이 신부로부터 세례와 지도를 받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삶의 위로와 희망을 얻었다. 그는 1614년 마닐라로 추방되어 마카오에서 선종하기까지 동양포교를 위하여 지칠 줄 몰랐던 사도이며 훌륭한 수도자였다. 말년에는 「일본 순교록」를 저술하여 많은 기리시탄들을 만세에 알리는 역사가로서, 특별히 포로 조선인 기리시탄에게는 잊을 수 없는 영원한 목자로 기리 남을 것이다.
박양자 수녀 <한국순교복자수녀회·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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