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 여정 따라 세상에 사랑 심고…
9박10일 일정서 광야의 길 묵상
말씀에 따르는 순명의 삶 다짐도
『「너희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요한 15, 19)는 말씀이 사뭇 가슴에 와 닿습니다』(서울대교구 정진석 대주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게 제겐 꿈같은 일입니다. 생각할수록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한국평협 이관진 고문).
『하느님께서는 믿음이 있으면 불가능이 없음을 보여 주셨습니다』(한국평협 손병두 회장).
양을 치던 모세가 출애굽의 사명을 받고 십계명을 받아 「야훼의 산」으로도 불리는 시나이(Sinai)산. 울퉁불퉁 골이 진 화강암으로 뒤엉킨 산줄기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시간에 따라 그 빛깔을 바꾸자 산정에 서있던 이들은 호기심 많은 아이로 변모했다. 이 산에서 타지 않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전해져오는 야훼의 음성을 듣던 모세를 떠올리는 양 사뭇 진지한 모습도 겹쳐졌다.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성경의 땅에서 성가정의 모범을 되새기기 위해 4월 27일∼5월 6일 9박10일간 마련한 「이집트·이스라엘 성지순례」에 참가한 이들은 성지 곳곳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를 들으려는 듯 여정 내내 진지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흘째인 4월 30일, 밤길을 재촉해 시나이산을 오른 순례단은 산정 바로 아래에 위치한 산장에서 첫 새벽을 맞으며 감격에 찬 미사를 봉헌했다. 젊은이들에 뒤질세라 줄곧 힘찬 모습으로 여정에 함께 하며 평신도들과 성가정의 의미를 나눠온 정진석 대주교는 이날 미사를 집전하며 주님을 향한 자신의 다짐과도 같은 기원을 털어놓았다.
『주님, 북녘 땅에도 종교의 자유를 주세요. 그리하여 북녘 형제들도 당신을 알고 행복을 누리게 해주세요. 또, 2020년에는 복음화율이 20%가 될 수 있도록 저희를 북돋워주세요. 아울러 모든 가정이 행복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평협이 펼치고 있는 아·가운동이 잘 될 수 있도록 저희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십시오』
하산 길, 시나이산 중턱에 위치한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는 모세가 처음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불타는 떨기나무가 수천년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 성가정의 여정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하고 일러 주었다』(마태 2, 13).
- 광야
유다인들의 과월절에 이스라엘에 도착한 12명의 순례단을 처음으로 맞고 배웅한 것도 광야였다. 광야를 앞에 두고 서자 두 인물이 묵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모세와 예수.
비옥한 땅의 상징인 이집트 고센 땅을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와 온통 누런빛으로 뒤덮인 광야를 앞에 둔 모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간간이 잿빛이 박힌 누런색 천지의 광야를 건너며 성가정을 떠올린다.
『야! 이스라엘 백성도, 성가정도 이 길을 걸어서 건넜다는 말 아냐?』
누군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 마디가 일행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 「왜 하느님은 굳이 성가정으로 하여금 광야를 건너게 하셨을까? 다른 손쉬운 길도 많이 알고 계셨을 텐데…」
도로가 놓인 지금도 쳐다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광야를 앞에 두고 아기 예수와 갈 길을 번갈아 바라보며 몇 번이고 마음을 다졌을 성 요셉. 그의 결심과 선택에 하느님 나라를 향한 대장정은 기로에 놓였을 법하다. 예수의 성가정이 헤쳐나간 황량한 광야는 사랑이 마를 대로 마른 황막한 오늘의 세상, 우리의 마음과 닮아 있지 않을까? 10일간의 순례길은 성가정의 여정을 따라 각자가 세상에 심고자 하는 사랑의 풀 한포기를 찾으려는 심정으로 나선 길이었다.
- 성가정 아기 예수 피난성당
성가정이 2년간 이집트에 피난해 사는 동안 두 달간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곳에는 현재 「성가정 아기 예수 피난성당」이 들어서 순례자들을 맞는다.
예수님의 성가정이 고향을 등지고 이집트로 피신하고,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른 것이었다. 피난성당은 새삼 성가정의 모든 결정권이 천사를 통해 이끌어주시는 하느님께 달려있었음을 돌아보게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책을 찾기보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하느님의 이끄심에 전적으로 의탁한 요셉. 주님의 말씀을 가정의 중심에 놓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 실천하며 가정을 이뤄가려는 요셉 성인을 비롯한 성가정의 굳건한 믿음과 순명의 자세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생각하며 두 손을 모으게 된다.
■가톨릭 카이로 한인공동체와 만남
“영적 목마름 채우는데 관심 갖길”
이집트의 수도이자 아프리카 최대 도시인 카이로 남부의 외국인 밀집지역인 마디(Maadi). 이곳에서 하느님의 향기를 머금고 살고 있는 한인 신자공동체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당연한듯 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집트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워낙 가톨릭 교세가 약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영적인 면에서 굶주려 있다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피정 등 한국에서는 원하기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았던 신앙생활도 여기선 꿈꾸기보다 힘들 뿐 아니라 미사도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유일한 가톨릭 카이로 한인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신용구(세베리노.49) 회장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디지역에 위치한 콥트 정교회에 속한 성가정성당을 빌려 미사를 봉헌하는데다 금요일을 안식일로 지내는 이슬람의 달력에 따라 매주 금요일 딱 한번뿐인 주일미사를 놓치면 미사 봉헌조차 힘들 뿐 아니라 고해성사마저 한국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린이 20명을 포함해 60명 정도의 한인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고 있어 6개월 전보다는 늘어난 수라고 한다.
한국에서 서울대교구 정진석 대주교를 비롯한 평신도 대표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여 가까이를 손꼽아 기다렸다는 그들의 얼굴에서는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4월 28일 한인공동체로서는 처음으로 대부분의 공동체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주일 아닌 날 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정진석 대주교는 『행복의 시작이자 근원은 가정』이라고 강조하고 『주님이 여러분을 잊지 않고 늘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달라』며 성가정의 모범을 따라 살아갈 것을 당부했다.
3년째 카이로에 살고 있다는 유순애(베로니카.57)씨는 『신앙의 새로운 계기가 부족해 보통 이민 온 지 5년이 넘으면 냉담에 빠지기 일쑤』라며 『수시로 영적 목마름을 겪는 이들에게 교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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