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입장 지지해줄 수 있는 신자 전문가 참여 절실하다”
정부의 생명공학 육성 방침 생명에 대한 고려 거의 배제
사안 자체의 중요성에도 소수 관계자들만 고군분투
신자 과학자·의학자 참여 필수
한국 천주교회가 범교회적인 생명운동에 나서야 할 필요성은 오늘날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한국 사회 안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은 범교회적으로 전개돼야 하고, 이러한 교회 내의 움직임은 사회 전반으로, 국민 전반으로 확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 안에서 생명운동의 실천과 교육이 강화돼야 할 필요성은 최근 들어 생명운동 진영의 열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는 인식에 기인한다.
특히 올해부터 반생명적인 법이라고 지목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이 발효된데 이어 이 법 자체가 일부 생명과학자들의 반생명적인 연구를 규제하기보다는 오히려 면죄부를 부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생명윤리법의 지지에 탄력을 받은 정부는 최근 이른바 바이오 강국 건설을 위해 생명공학(BT) 분야에 올해만 무려 7086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6016억원보다 17.8%나 증가한 것이다.
과학기술부는 4월 26일, 「2005년도 생명공학 육성 시행계획」을 심의 확정했다며 이같이 밝혔고, 여기에 민간 부문의 투자 1290억원을 합하면 올해 국내 생명공학 분야의 투자액은 모두 8376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지원의 핵심 부분은 역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연구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생명공학 육성을 위한 발걸음은 거침이 없다. 바이오 산업의 장밋빛 청사진의 한켠으로, 약간의 생명윤리에 대한 언급을 양념으로 구색을 갖추면서 정부와 일부 생명과학계는 국가 경쟁력 강화와 산업 발달을 명목으로 인간 생명에 대한 고려를 거의 배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천주교를 비롯한 종교계와 뜻있는 시민단체들은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러한 정부와 생명산업계의 강력한 생명과학 육성 추진을 전혀 저지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생명윤리, 특히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생명윤리 문제들, 주로 인간 배아 복제 문제를 둘러싼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 교회의 이에 대한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 인간 배아는 수정되는 순간부터 하나의 온전한 생명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그 성장과 생명 자체를 저해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인 행위이며, 배아 복제 실험은 배아 파괴를 필연적으로 유발하므로 살인 행위에 준한다는 것이 교회의 한결같은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교회 안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다른 여러 문제와 마찬가지로 많은 신자들은 이러한 행위가 지니는 비윤리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사안 자체가 갖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생명운동이 전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생명윤리법의 제정 과정을 보더라도, 일부 생명윤리학자를 포함한 소수 관계자들만이 고군분투할 뿐 교회 전반의 의지가 결집되지 못했다.
이에 반해, 생명과학 및 산업계, 정부 유관 부처의 긴밀한 공조와 협력은 결국 생명윤리법을 생명윤리의 측면에서 볼 때, 극도의 악법으로 제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법 제정 과정에서 보인 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의 미온적인 대처는 깊이 반성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자 전문가들의 지원이 거의 전무했다는 점은 치명적인 부분이다. 생명과학의 문제는 기존의 윤리적 잣대로 쉽게 풀어내기 어려운, 고도의 전문성을 요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신자 과학자, 의학자들의 깊은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성직자 중심의 생명윤리학자들의 주장은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할 때 자칫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다. 따라서, 확고한 윤리적 입장에 바탕을 두되, 전문성을 바탕으로 여론을 설득할 수 있는, 교회의 입장을 지지해줄 신자 전문가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과로 볼 때, 신자 전문가들의 참여는 거의 전무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부 신자 전문가들은 오히려 인간 배아 복제 실험의 핵심 역량으로 참여하고 있기까지 하다.
인간 배아 실험 문제는 낙태 문제에 준하는, 작금의 생명윤리 문제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현안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향후 교회의 생명운동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서, 보다 효과적이고 전격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때, 교회가 주장하는 「생명문화의 건설」은 큰 고비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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