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늦게까지 기승을 부렸지만, 그래도 봄은 신비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꽃들을 한 아름 안고 우리를 찾아왔다. 반가운 손님 같다. 「천일의 앤」으로 유명한 헨리 8세의 애첩 앤 볼린이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고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은, 오월이군요, 라고 한다. 짧은 말이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표현이었다.
생명에 대한 여운과 비극적 운명에 대한 담담한 수용이 그 말 안에 다 녹아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천하의 요부(妖婦)로 소문나 있던 그녀였지만, 그런 진솔한 표현은 아마도 깊은 소외와 어둠의 과정을 정직하게 거치면서 하느님 앞에 서는 법을 배웠기에 나온 설득력이요 진실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에스델 역시 죽음을 직면하게 되면서 그녀 자신과 민족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답부터 제시하자면 그것은 오염되지 않은 사랑과 믿음이었다.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결국 순수와 진실로 무장된 믿음 아닐까.
역사성
에스델서는 매우 구체적인 묘사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페르시아의 도시 수사(Susa)에 대한 상세한 지리적 설명, 당시의 정치적 상황, 연대기적 표기, 등장인물들의 이름 등은 전달되는 스토리에 매우 생생한 역동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에스델서가 실제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보도인가 라는 질문에는 쉽게 긍정하기 어렵다. 에스델의 남편으로 되어있는 아하스에로스왕은 「크세르크세스」(그리스식 이름)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역사적 기록들에 의하면 그의 왕비는 와스디가 아니라 「후타오사」(그리스식 이름은 아토싸,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그녀를 아메스트리스로 호칭함)로 되어있다.
그런가하면 유다인 여자가 페르시아의 왕비가 되었다는 언급은 그 어떤 기록에서도 발견할 수 없고, 페르시아 통치시대에 유다인들에 의해 계획된 조직적 저항이 있었다는 기록도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에스델서는 매우 사실적인 묘사로 내용에 긴장감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사건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문학유형
에스델서는 일종의 「역사소설」로 간주되어져 왔다. 부림절이라는 축제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창작된 소설이라고 이해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책을 「미드라쉬 문학」이라고 보기도 한다. 「미드라쉬」란 성서본문에 대한 해설을 이야기식으로 풀어가는 일종의 성서해석 방법론인데, 에스델서가 창세 37~50장에 등장하고 있는 요셉 이야기와 매우 유사한 줄거리로 되어 있기에 제기된 입장이었다. 즉 에스델서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 이야기에 대한 일종의 각색으로, 요셉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제작된 비유적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에스델서를 「교훈문학」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여성이 가지는 매력, 상선벌악에 대한 전반적 주제 등은 지혜문학적 주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작 연대와 저자
역사소설은 그 연대를 추정하기 쉬울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소설은 분명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겠지만, 그 제작은 2005년 현재에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스델서는 페르시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유다인들이 받는 박해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다인에게 관대했던 페르시아 시대의 작품으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오히려 이러한 분위기는 유다인들에 대한 박해가 극에 달했던, 시리아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 치정에 더 어울린다. 즉 이야기의 배경은 페르시아 시대이지만, 저술된 것은 그보다 훨씬 후대인 그리스 대제국시대로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에스델서는 기원전 3세기경 히브리어 본문이, 그리고 기원전 2세기 중엽에 그리스말 본문(첨가된 부분을 포함한)이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저자에 대하여도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요셉 전승이나 출애굽 전승 같은 유다인들의 고대 전승에 익숙했고 이를 자유롭게 재구성할 수준의 실력을 갖춘 익명의 유다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명을 사는 법
5월을 맞으니 오래된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것처럼, 온 세상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생명으로 가득하다. 어떤 사건이든, 어떤 시간이든, 무엇인가가 내게로 다가올 때는 인생이 나에게 무엇을 또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습관처럼 하게 된다.
계절의 여왕 오월을 닮은 에스델의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오염되지 않은 사랑과 믿음, 전적인 헌신을 배웠으면 한다. 그렇게 될 때 나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부드럽고 강해질 수 있을테니…. 부드럽고 포근하지만 점점 강력한 저력으로 생명을 전해주는 이 오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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