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한국사회 근현대화에 역동적 역할”
30여명의 연구단 논문 42편 발표
문화영성 주제로 지속적 연구해야
「근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단장=박일영)은 한국학술진흥재단 기초학문육성 사업비를 지원받아 지난 3년간 문화, 신학, 역사, 사회과학 등 총 4개분야에 걸쳐 한국 근현대 역사 안에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제 분야를 연구, 검토해왔다.
본지는 4차례에 걸쳐 연구단이 발표한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 논문 14편을 요약, 보도해왔으며, 이번주를 끝으로 박일영 단장(사진)의 총평을 싣는다.
I.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한 남한의 그리스도교 신자는 인구의 25%에 육박한다. 그리스도교는 100년 남짓의 단기간 내에 한국의 최대 종교가 된 것이다. 인접한 일본과 중국의 그리스도인은 인구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러한 현상과 비교할 때, 한국의 사례는 그 자체가 연구와 관심의 대상이다. 이러한 독특성 탓에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전 세계 종교 연구자들에게 지대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02년 8월에 시작한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 연구는 3년여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이 연구 프로젝트는 필자가 책임을 맡고, 6명의 현직 대학 교수와 8명의 박사학위 소지자로 연구원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15∼16명의 석.박사과정 대학원생과 대학생으로 연구보조원이 꾸려졌다.
이렇게 총 30여 명으로 구성된 「근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은 지난 3년 동안 기념비적인 과업을 완수했다고 감히 자부해 본다. 필자를 포함한 연구원들은 각자 책임 하에 매년 1편씩 연구논문을 꼬박꼬박 작성하여 발표하였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충실하게 연구 결과를 내었다. 그렇게 모인 논문은 모두 42편에 이른다.
II.
본 연구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 100년의 역사 속에서 가톨릭교회가 한국 사회와 상호 작용해 온 발자취들을 시기별로 나누어 천착하였다. 연구대상 시기는 크게 구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로 구분하였다. 또한 시기 구분이 어려워 주제별로 연구해야 하는 분야도 있었다. 분과의 구성은 처음에는 사상.문화 분과와 정치.사회 분과로 나누어서 공동 연구를 진행하였다. 제2차년도부터는 연구의 집중도를 높이고, 연구의 질을 더욱 심화하기 위하여 분과별 모임을 4개로 좀 더 세분화하였다. 역사·문화·신학·사회과학 분야가 그것이다.
연구 내용은 토착종교, 민속과 문화전통, 종교성과 신심, 경전 해석, 문화간 교섭, 교회사와 세속사의 관련, 신학교 교육, 여성운동, 근대화, 시민사회의 형성과 발전, 가톨릭 사회교리, 사회복지, 법.제도적 분야 등을 다루었다. 이를 통하여 근·현대 100년 속에서 종교 간의 만남이 제시하는 삶의 근본적인 의미, 이 과정에서 수용 주체인 한국인이 갖는 고유한 종교문화적 특성과 창의적 잠재력의 측면, 창조적 변형을 시도하면서도 전통적인 요소들을 고수하는 특성들을 고찰하였다.
이러한 주제별 연구와 더불어서 매년 대규모의 본격적인 사회조사도 병행하였다. 첫 해에는 종교 연구자 200명을 대상으로 이들의 천주교에 대한 인식조사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는 「천주교와 한국 근현대의 사회문화적 변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다. 이 연구보고서는 학술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금년 가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는 국제도서전에 출품될 것이라는 통지를 최근에 받기도 받았다.
2차 년도에는 전 국민 1000명과 천주교 신자 300명 도합 1300명을 대상으로 천주교에 대한 인식을 조사하였다. 이 조사보고서는 이미 재판을 간행할 만큼 학계와 교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금년 제3차년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러 종단의 종교 지도자 400여명을 대상으로 천주교에 대한 인식조사를 실시 중이다. 이미 설문 조사를 마무리하고, 분석과 심층 해석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III.
이 과정을 통해 가톨릭교회가 근대화의 통로이면서, 촉진자 역할을 한 측면들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교회와 국가관계에서 정교분리원칙을 지키면서도 양자의 영역이 상호 어떻게 관여해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종교의 수용과정이 사상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었다. 이처럼 학제적인 연구를 통하여 가톨릭교회와 한국사회가 형성해온 역동적인 관계를 파악하여 외래 종교의 수용과정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변인들을 포착하고, 이를 연결하는 이론을 구축한 것이 이 연구의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다.
이렇게 산출된 연구 결과들은 국내외 학회와 유수한 학술지에 게재하는 한 편, 공개 심포지엄에서의 전문적 토론을 거쳐 상·중·하 세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을 하고 있다. 현재까지 상권이 출판되었으며, 금명간 중권이 그리고 금년 안에 하권까지 완간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미 하권에 해당하는 제3차년도의 원고도 마무리된 상태이다.
이 연구 결과들은 해외에도 소개되어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바티칸의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와 이탈리아 국립 로마 대학교와 볼로냐 대학교는 국제 심포지엄의 공동 개최를 구체적으로 제안하여 추진 중에 있다. 미국의 데이튼 대학교, 인도 방갈로르의 교황청립 다르마람 대학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학교, 스위스 프리부르 대학교 등지에서도 학술적 교류와 협력 방안을 제안해 오고 있다.
IV.
그 동안 가톨릭교회를 대상으로 한 연구물들은 대부분 방대한 분량, 특수한 전문용어의 사용, 배포망의 한계, 내부자의 언어와 논리 탓에 한정된 연구자들만을 위한 자료로 이용되어 왔다. 이러한 실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근현대 한국가톨릭연구단」은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의 활용 방안들을 강구하고 있다.
첫째, 대상 층에 따라 분량과 난이도를 조절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특히 해당 분야의 종사자를 중심으로 하는 자료를 별도로 작성하여 활용하고 있다. 또한 전국에 분포한 가톨릭계 대학들의 교재로 사용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둘째, 교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연구보고회를 개최하거나, 연수 과정에서 강의와 세미나를 주관하여 연구결과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한다. 이미 평신도 지도자 양성과정, 수도자 양성과정, 수도자 평생교육과정, 사제 재교육과정 등에서 고정 프로그램으로 채택하는 곳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셋째, 각 연구자들은 연구 내용들을 발전시켜 「가톨릭문화총서」(가칭)로 출판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전래 2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문화적 풍토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 이 연구결과는 한국 근.현대 100년 이전과 그 이후의 단절된 역사를 사상과 문화의 영역에서 복원하는 데에 기초 자료로 활용 가치가 높다. 따라서 굴절된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억압과 통제로 인해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실상을 파악하는 데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V.
이번 연구가 갖는 한계라고 할까, 아쉬운 점도 물론 있다. 이제까지의 연구가 주로 한국 근.현대의 격동적 시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만큼, 주로 한국 사회와 교회의 정치.사회적 상호관계에 집중한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와 장기간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연구자들이 호흡을 맞추고 팀워크를 다진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성숙하고 심화된 방법론을 동원하여 질 높은 연구를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
그 한 방편으로, 필자 스스로는 차기 과제로 문화영성적 측면에서 한국 가톨릭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문화영성이라는 주제는 교회 내부의 수요도 말할 나위 없이 점증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동북아 중심 국가로서 한국이 21세기 「세계화와 영성의 세기」에 국가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이 지역에서 문화와 정신을 주도해 나가는 데에도 적지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사료된다.
정신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21세기 세계화의 소용돌이는 세계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동북아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이 지역이야말로 더욱 심각한 대립과 반목의 모습을 농축하고 있다. 문화적 갈등과 정체성의 상실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곳보다 높은 지역이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한국의 가톨릭은 바로 이와 같은 문화의 수용과 변용, 그 과정에서 빚어진 첨예한 대립과 갈등, 정체성의 우려, 국제화와 개방을 이미 100년 전에 온 몸으로 겪어내었다. 가톨릭의 이와 같은 문화영성적 경험에 대한 탐구는 현 시대 한국인 모두에게 시행착오를 예방하고, 물심양면의 손실을 줄이는 훌륭한 참고 자료요 안내역이 될 것이다.
박일영(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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