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쎄마니에 올라 “항상 깨어있겠다” 다짐
예수님 삶의 여정 함께 걸으며 오롯한 믿음 봉헌, 성가정 다짐
【이스라엘=서상덕 기자】
† 갈릴래아
『나를 본 것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요한 14, 9)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40일 동안 사탄의 유혹을 견뎌내신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신 갈릴래아.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갈릴래아 호숫가.
예수님이 세상을 향해 처음으로 낚싯대를 드리우셨던 갈릴래아는 2000년 전 치열했던 역사를 아는 지 평온한 모습으로 순례단을 맞았다.
예수님으로 인해 복음의 진원지로 거듭난 갈릴래아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있는 이방인의 땅으로 불리며 깔봄을 당하던 과거의 그늘을 찾기 힘들었다.
예수님 전도활동의 중심 무대로 갈릴래아 호수에 인접한 가파르나움은 「예수의 도시」(마태 9, 1) 「예수의 집이 있는 곳」(마르 2, 1)이라 불릴 정도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자주 머무셨던 곳. 특히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던 가파르나움 회당에서 3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사도 베드로의 집터(마르 1, 29∼30)는 갈릴래아 호수를 바라보며 숱한 생각에 잠기셨을 예수님을 묵상케 한다.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마르 2, 11).
예수님의 한 마디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간 중풍병자는 복되고 복된 사람이었을 법하다.
갈릴래아 호숫가 타브가(Tabgha)의 「베드로 수위권성당」과 「오병이어기적 기념성당(Church of the Multiplication)」을 거쳐 호수 북쪽에 위치한,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를 하신 행복선언산에 오르면 믿음이 부족해 풍랑 속에 빠진 베드로마저 당신의 도구로 쓰신 주님의 역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 베들레헴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 14)
만삭의 아내를 부축하며 달려온 것이 벌써 수백리 길. 나자렛 사람 요셉은 머리 누일 곳을 찾다 마구간에서 가장 비천한 모습으로 오신, 그러나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실 메시아의 탄생을 맞았다. 이로써 예루살렘 남쪽으로 8km쯤 떨어진 언덕에 위치한 베들레헴은 인류 역사에 일대 전환점을 이룬 현장이 되었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그동안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지금은 아랍인들의 거주지가 되어 있었다.
순례단은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실재를 확인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려 발 디딜 틈 없이 북적대는 순례자들 틈에 끼어 아무리 써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 주님을 향한 우리의 순정을 봉헌하며 능력도 함께 봉헌했다. 아울러 하느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짧은 여행이 긴 호흡을 필요로함을 되새겼다.
† 성도 예루살렘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9∼20)
예루살렘만큼 많은 역사, 정치사회, 문화 예술적으로 다양한 말을 떠오르게 하는 땅은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하느님의 아들이 사랑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억압받고 소외된 가난한 이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전 인류를 향한 새로운 계약의 여정을 위해 손수 사람에게 먹히는 빵이 되셨으니 바로 여기가 거기다.
십자가의 길, 통곡의 벽(Western Wall), 게쎄마니, 최후의 만찬, 올리브산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말들이 고구마 덩쿨처럼 줄줄이 따라나오는 이 거대한(?) 땅은 그러나 작은 산들로 이뤄진 도시다.
키드론 계곡 너머 올리브 산을 오르는 길은 그대로 주님이 걸으신 길을 좇는 일이었다. 주님의 기도 성당(Church of the Paternoster), 예수 승천 경당, 예수님 눈물교회(Dominus Flevit)….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순례단의 마음을 끈 곳은 『나를 위해 단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단 말이냐』며 슬퍼하시면서 밤을 새며 기도하시던 게쎄마니 동산(Garden of Gethsemane)이었다.
이 조그만 땅덩이가, 인류의 영원한 횃불이 되어 꺼질 줄 모르고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늘 새로운 빛을 발하는 것은 아직 그 땅의 희망과 역사적 사명이 완성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류의 살길과 나아갈 길을 환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은 믿는 이들에게 영원히 미완의 땅, 역사의 땅이자 늘 새롭게 빛을 발하는 희망의 언덕인 것이다.
일년 내내 순례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도 순례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무덤성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곳(12처), 시신이 내려진 곳(13처), 빈 무덤(14처) 등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2000년을 이어져 오는 신앙의 실재와 연속성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순례자의 눈을 잠시 떠나면 이곳은 생각만큼 그리 평화롭지 못한 곳이다. 이 무덤성전을 중심으로 숱한 다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씁쓸해진다. 지금도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콥트교회, 에디오피아 정교회 등 6개 종파가 하나의 성전을 갈기갈기 찢어 소유하고 있으니.
한국의 순례자들은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예루살렘이 과거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평화의 계약을 새기는 현재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순례 함께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다 이루었다 하신 십자가 신비 묵상”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은총이었습니다』
한국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성가정의 모범을 되새기기 위해 4월 27일부터 5월 6일까지 마련한 「이집트.이스라엘 성지순례」에 함께 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시종 감격을 누르기 힘든 모습이었다.
순례 일정 내내 예수께서 숨을 거두시기 전 『다 이루었다』(요한 19, 30)고 하신 말씀을 깊이 묵상했다는 정대주교는 이 말이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십자가는 하느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당신 목숨까지 바친다는 지고한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을 따르고자 하는 신자들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나름의 소명을 실천할 때 보람과 참된 행복을 얻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조건없는 사랑과 나눔을 역설한 정대주교는 우리의 모든 길이 우리 마음대로 선택한 것이 아님을 재차 강조했다.
성지 순례를 통해 가정의 중요성을 수차례 역설한 정대주교는 청소년 교육과 관련해서도 교회와 신자들의 보다 적극적인 몫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의 모든 일에 함께 하시며 우리를 불러주시는 하느님을 느끼는 것이 새로남의 출발점입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백성들에게 전하는 충실한 중재자였던 모세의 삶을 통해 주님의 소리를 새롭게 듣고 은총을 실감하게 됐다는 정대주교는 교회와 신자들의 모든 활동이 예수님의 말씀과 체험에 기초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에게서 희망을 찾고 그것을 나눌 때 주님이 각자에게 심어주신 복음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밝힌 정대주교는 『주님께서 주신 기쁜 소식을 왜곡하는 세속의 가치관과 문화에 맞서 이를 정화시켜 나가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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