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톨릭의대연맹회의 상보
연구목적·의료효율성 중시하는 현실 넘어서
교회 가르침따라 생명 존중하는 의료인 양성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학장=천명훈 교수)은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가톨릭대 성의교정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제12차 세계가톨릭의대연맹회의를 개최했다. 「가톨릭의학교육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열린 회의에서는 세계 8개국 14개 가톨릭대 의과대학 관계자 40여명이 모여 가톨릭 정체성과 도덕적 가치에 걸 맞는 의과대학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의학교육기관 방향 제시
안락사와 낙태, 인간배아복제 연구 등은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의료계의 가장 큰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가톨릭교회는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오로지 연구목적과 의료의 효율성만 보고 행해지는 이 같은 연구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취해 왔다.
따라서 미래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교회운영 의과대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생명윤리에 반하는 각종 연구에 대해 과감히 잘못을 지적하고 대안을 내세울 수 있는 의료인을 양성해야 하는 책임이 더해진 것이다.
또 중요성이 더해가는 의료윤리가 의료계에 뿌리 깊게 자리 내려 교회의 가르침에 부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열린 「제12차 세계가톨릭의과대학연맹회의」는 교회 운영 의학교육기관이 직면한 당면 과제를 검토하고, 가톨릭적 정체성을 어떤 방법으로 교육과정에 적용해 예수그리스도를 본받는 가톨릭의료인을 양성할 것인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총 네 가지 주제로 진행된 이번 회의 중 가톨릭 의과대학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정체성을 논의한 「무엇이 가톨릭 의과대학을 가톨릭적으로 만드는가?」 주제 발제와 논의내용은 세계 각국 가톨릭 의과대학의 교육과정과 교회 가르침을 따르는 다양한 실천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앞으로 교회가 운영하는 교육기관이 추구해 나가야 할 근본적인 방향을 간접적으로 제시한다.
생명윤리교육 강조
총 4개의 발제와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칠레 가톨릭대 의과대학, 미국 뉴욕 의과대학 등 3개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을 소개하는 것으로 진행된 회의에서 참가자들은 가톨릭적 인간관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전인교육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으며 구체적인 방법으로 무료진료, 자선활동 등 현장실습을 꼽았다.
칠레 「앙코라 프로젝트(Ancora project)」는 현장실습의 한 사례다. 1930년 설립된 칠레 교황청립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은 빈민지역 2만여명의 외래환자를 돌보는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경제적인 형편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은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의과대학생들은 현장 체험을 통해 봉사의 참 의미를 깨닫고 간접적으로 의료실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의과대학 관계자의 말이다.
칠레 가톨릭대 의과대학은 이밖에도 칠레에서 가장 큰 자선단체 「Hogar de Cristo」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의대생, 간호대생과 인턴, 레지던트들은 이 단체의 활동에 직접 참가해 빈민지역 거주민,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진료 활동을 하고 있다.
종교교육과 생명윤리교육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을 보면 6년에 걸쳐 총 4회(윤리 개론, 생명과학윤리, 사회윤리 Ⅰ, Ⅱ)의 윤리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23.5점의 학점 중 7학점을 윤리교육에 배정하는 등 윤리교육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일반 의과대학에서도 윤리교육을 중요시해 관련 과목을 개설하고 있지만 배당 학점이 극히 적거나 선택과목인 형편이다.
학생들을 위한 생명윤리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의 윤리교육 중점 교육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적인 의료기술에 그치지 않고 환자를 영적으로 돌보는 방법 또한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뉴욕대교구가 운영하는 뉴욕의과대학의 오코넬 학장은 『최근 환자들은 물리적인 치료행위 뿐 아니라 상담 등 영적 치료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의과대학 부설 생명윤리연구소는 「영성, 종교적인 지혜와 환자돌보기(Spirituality, Religious Wisdom and the Care of the patient)」 프로그램을 만들어 의료인과 종교인간 모임을 통해 환자 영적치료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제와 도전
교회가 운영하는 의과대학들은 현재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의료기관과 교육기관으로 인해 전통과 윤리를 내세우던 입지가 흔들리고 있으며, 안락사·낙태·배아줄기세포 연구 등에 맞서 교회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야 하는 힘겨운 싸움도 벌이고 있다.
이러한 과제에 대해 세계 가톨릭대 의과대학 관계자들은 우선적으로 가톨릭의 정체성과 전통을 기초로 한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의 치료는 비단 전문적인 기술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신과 도덕적 가치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의료인에 의해서 완치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각국의 사례들을 보다 활발한 정보교류를 통해 공유하고 널리 홍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성체줄기세포 연구처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연구에 매진하며 반생명적인 사회분위기에 맞서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교회운영 의과대학을 위한 교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노력도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회의 참가자들의 중론이었다.
■인간 배아연구 반대하는 가톨릭의대 입장 재확인
<서울대회 준비위원장 맹광호 교수 >
『이번 회의는 각국 가톨릭 의과대학들이 처한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실천할 수 있는 젊은 의학도를 양성하는 방법을 찾고자 마련된 행사입니다』
세계가톨릭의과대학연맹회의 준비위원장 맹광호(이시도로.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이번 서울대회를 통해 가톨릭 의과대학이 당면한 도전과 과제를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맹교수는 『회의 대주제인 「가톨릭의학교육의 과거, 현재, 미래」는 짧게는 5년, 길게는 20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가톨릭의과대학의 지난날을 되짚어보고자 마련된 것』이라며 『단순히 생리학적 모델교육에서 벗어나 가톨릭 교육기관만이 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의 방법들을 나누고 토론하는 유익한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맹교수는 『아울러 종교계와 의학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인 배아.성체줄기세포 연구를 비롯한 생명윤리문제에 대한 가톨릭 의과대학의 확고한 입장을 재점검할 수 있었다』며 『생명의 존엄을 밑바탕에 둔 교육만이 가톨릭 교육기관이 추구해나가야 할 참교육임을 다짐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현재 아시아에는 한국과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대만 등 5개국에 가톨릭 의과대학이 설립돼 있다.
맹교수는 이와 관련 『가톨릭대와 대구가톨릭대 등 한국의 가톨릭 의과대학이 주도하는 아시아지역 가톨릭대 의과대학 연합모임도 가질 생각』이라며 『이러한 모임을 통해 아시아지역만이 가진 특수성에 기초해 공통된 과제를 해결하고 가톨릭의사 양성을 범 아시아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세계 가톨릭대 의과대학 현황
600여 가톨릭대학 중 40여곳
교구나 수도회 등 운영주체는 다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교회가 운영하는 가톨릭대학은 600여개에 달한다. 이 중 의과대학은 40여개. 전체 교육기관의 숫자에 비하면 비교적 적은 숫자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과 칠레에 가장 많은 7개, 미국에 5개의 의과대학이 있다.
이밖에 한국(가톨릭대 의과대학,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대만,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멕시코 등 전 세계 20여 개국에 가톨릭 의과대학이 들어서 있다.
세계가톨릭의과대학연맹회의(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atholic Medical Schools, IACMS)는 전 세계 가톨릭 의과대학의 총장, 학장과 실무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급변하고 있는 의료 환경에 부응한 대처방안과 각국 대학 간 원활한 교류방법을 모색하고자 마련되고 있다.
2~3년마다 부정기적으로 열리며 올해 가톨릭대학교가 주최해 서울에서 열린 이번 회의는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갖는 뜻깊은 행사다.
사진설명
▶5월 11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열린 제12차 세계가톨릭의대연맹회의에서 준비위원장 맹광호 교수가 회의 안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5월 14일 절두산성지를 찾은 세계가톨릭의대연맹회의 참가자들이 기념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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