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3,16~18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영광받으소서”
오늘 우리가 경축하는 축일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께서는 위격이 서로 다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한체를 이루시어 높고 낮음도 없고 먼저 계시고 후에 계심도 없이 완전 무결하신 한 하느님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축일이다. 이 진리는 우리가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도리이기에 지난 2000년의 교회 역사상 많은 논쟁과 이단을 생성했다.
교리 시간에 교리교사는 삼각형이나 촛불을 가지고 이 교리를 설명하려고 시도도 해보지만 명쾌한 설명은 역시 어렵다. 이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하던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해변을 산책하며 이 교리에 몰두하고 있을 때에 어떤 어린 소녀가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떠다가 모래위에 난 구멍에 쏟아 넣는 것을 반복하는걸 보고 이상히 생각되어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의 대답은, 저 바닷물을 한방울도 남김없이 떠다가 이 구멍에 넣으려고 하고 있는 중이라고 대답하므로 성인께서는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니 중단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자, 그 소녀의 대답은 당신이 삼위일체 도리를 알아들으려고 하는 노력은 더욱 어리석은 짓이라고 하고는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삼위일체 도리는 깨닫는 도리가 아니라 믿어야 하는 도리임을 깨닫고 연구를 중단했다는 일화가 있다. 성서에 계시된 삼위의 관계를 찾아보면, 성부와 성자의 만남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부께서 당신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마르 1, 10)라는 말씀을 듣고 그분의 기쁨을 받는다. 성령 안에서 그분은 아들된 기쁨을 성부께 몰래 바친다(루가 10, 21~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서만 성부와 일치될 수 있는 만큼 성령을 동시에 계시하지 않고서는 성부를 계시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도 신의 위격이라는 것을 계시함으로써 『하느님은 영이시다』(요한 4, 24)라는 것과 그 표현의 의미를 또한 계시하신다.
성부와 성자께서 성령 안에서 일치하시는 것은, 그들이 서로를 소유함으로써 만족을 누리려고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교환하시기 위함이다.
그분들의 일치는 주기 위함이며 주는 선물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통교의 신비이시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를 일치로써 결합하신다면, 이분들께서는 그 본질에 있어서 통교이시며, 또 그분들의 공통된 본질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며, 타자안에서 존재하는 그것이다. 그런데 생명과 통교와 자유의 힘, 이것이 영이다.
하느님께서는 영이시다라는 말의 뜻은, 하느님께서는 전능자이신 동시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놓으시는 분이시며, 자신의 고유성을 최대로 주장하심과 동시에 자신에게 완전히 이탈하심을 뜻한다.
그리고 또 당신의 피조물을 소유하시면서 이 피조물들이 개성을 갖고 존재하도록 해주시는 것을 뜻한다.
물질이 아니라는 것은 모든 한계를 벗어나고 어떤 폐쇄적인 것도 모르며 영원히 그리고 순간순간마다 생명과의 통교를 위한 새롭고 싱싱한 힘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파고들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이 이 삼위일체 교리이기도 하다.
나는 학창시절에 이 삼위일체론을 4학점이나 따고도 혼란만 더 와서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교수님의 대답은 『나는 여러분들보다 더 모릅니다』하신 것이 기억난다. 유치원생에게 최첨단 전자공학의 이론을 아무리 열심히 강의한들 알아들을리 없다면, 하물며 하느님의 가장 심오한 삼위일체 진리를 한정된 우리의 머리로 이해하려 드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어린이들이 비록 이해는 못할지라도 현대의 최첨단 과학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편안히 살듯이 우리를 속이지 못하시는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진리이니 비록 이해는 못하더라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예비신자들에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느냐고 묻고 믿는다는 대답을 확인한 후에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강복을 주어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우리 신앙의 바탕이요 핵심인 관계로 성호경을 외울 때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은 성호경을 외우고 있다.
축복하는 사제도, 축복을 받는 신자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영원히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멘.
-허성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상담〉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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