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을 만큼, 비열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 게 인간이라는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될 때, 나 역시 그럴 수 있고 내가 사랑해온 사람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될 때, 그래서 삶에 짙은 그늘과 상처, 그림자가 어쩔 수 없이 드리워지게 될 때, 유일한 희망과 자존심의 보루로 마음 안에 꼭꼭 챙겨두는 것은 힘겹지만 거짓 없는 「진실」이다. 난관을 마주할 때 마다, 이미 적이 된 상대와 보이지 않는 지능싸움은 시작되고 머리를 싸매 최대한 영리하고 야무진 대안을 모색해 보지만, 그건 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할 뿐, 보다 명료한 진실을 위해 필요한건 그저 단순하게 정돈된 마음, 성모님의 마음을 닮은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 에스델이 왕비로 간택된 것은 화려한 치장 혹은 이목을 끄는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 주에 읽게 될 성서 본문은 「가장 소박한 치장」을 한 그녀가 왕비로 간택되었음을 부각시키면서,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단순한 예의와 하느님을 향한 열정임을 가르쳐준다.
2장, 새로운 왕비 에스델
2장은, 모르드개의 도움으로 왕비에 오른 에스델과(전반부: 1~18), 왕에 대한 음모를 밝혀내는 모르드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후반부: 21~23절).
와스디가 폐위되자 왕의 시종들은 나라에 있는 모든 아가씨들 중, 용모가 어여쁜 젊은 처녀들을 수소문하여 새 왕비로 삼고자 한다(2절). 이러한 풍습은 고대 궁궐내부 사회가 그곳에서 일할 여성들을 선택하던 일반적 관행이었다. 이는 고대 근동 지역뿐 아니라 유럽의 오래된 동화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설이나 역사실록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간택 과정 중, 수사 성에 살고 있던 유다사람 모르드개(5절)와 「하다사」라고 불리던 에스델이 등장한다(7절). 「하다사」란 일종의 나무이름으로, 「향기 나는 상록수」를 지칭하는 히브리이름이었고, 「에스델」은 바빌론의 여신이었던 이쉬타르(Ishtar)에서 파생된 바빌론-페르시아식 이름이었다. 교포들이 일반적으로 한국이름과 외국이름을 공유하고 있듯이 에스델은 히브리이름과 페르시아 이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드개는 에스델과 사촌지간이었지만, 부모 없는 고아였던 그녀를 자기 수양딸로 삼아 길러왔다(7절).
다른 아가씨들과 함께 왕궁에 들어간 에스델은 거기서 궁녀들의 총관리인이었던 해개의 총애를 받게 되는데, 10절은 그녀가 자신의 「국적」을 밝히지 않았음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유다인이었던 그녀의 국적과 관련된 것임을 암시한다. 화려하기 그지없던, 무려 12달 동안의 「몸만들기」 과정 후(12~13절), 그녀는 왕을 만나게 되고, 소박한 치장에도 불구하고 왕의 간택을 받게 된다. 왕의 재위 7년 10째 달이었고, 와스디가 폐위된 지 4년만의 일이었다(17절).
2장의 후반부는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밝혀내는 모르드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반부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내용으로 하고 있고, 전반부에 비해 내용이 매우 빈약하여, 학자들은 이 본문이 많은 부분 훼손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빈약한 본문에도 불구하고 에스델서 전체의 맥을 이끌어줄 주요 주제, 「모르드개의 지혜」, 「에스델의 국적」, 「모르드개의 충고를 따르는 에스델」 등의 내용이 종합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3장, 하만의 등장과 박해
3장에서는 아각 사람 하만이 등장한다. 경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왕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게 되어, 모든 대신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절해야할 정도로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2절). 갈등의 시작은 유독 모르드개만이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데서 발생했다(2절). 하만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결국 그는 모르드개와 그의 백성을 전멸시키는 것으로 복수를 계획한다(6절). 이 부분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하만이 단순히 모르드개 개인에게만 복수를 계획한 것이 아니라 유다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도를 통해 저자는 에스델이 쟁취한 구원이, 비단 모르드개만을 위한 것이 아닌 유다 민족 전체를 위한 것이었음을 역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 피비린내 나는 몰살계획이 모의된 것은 아하스에로스 재위 12년째였고, 에스델이 왕비에 간택된 지 5년이 지난 때였다. 하만이 제기한 유다인들의 죄는 그들이 자기네 법(율법)만을 지킬 뿐, 페르시아 왕의 법은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8절). 하만은 이러한 고발과 함께 그들을 멸족시키는 것을 허락한다면 왕에게 은 일만 달란트를 왕궁으로 유입할 것을 약속한다. 이렇게 하여 전국에는, 모든 유다인들을 몰살할 것을 명하는 칙령이 내려진다(12~13절). 그러나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잔인한 몰살 명령은, 관용책을 전면에 내세웠던 페르시아의 정치노선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이 사건을 실제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해야 한다. 이러한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 에스델의 활약이다. 그 내용은 4장에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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