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예술의 감동적 합일 기대”
지난 달 서울의 한 미술관에서는 「서양미술 400년전」이라는 전시회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7세기 바로크 미술로부터 시작해서 20세기 회화의 흐름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라는 대대적인 홍보에 힘입은 탓인지, 전시 마지막 날까지도 엄청난 인파가 모여들어, 입장권을 구입하는데만도 길게 늘어선 줄을 따라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겨우 들어간 미술관 내부에서는 북적이는 사람들을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한 전시실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일반인과 대학생, 중고등학생, 그리고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꼬마들도 엄마 손을 잡고 미술관으로의 행렬에 함께 한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 향유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로 강렬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여유 있고 조용한 감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할 미술관 전시실이 소란스러운 시장통으로 변해버린 데는 수용능력을 고려치 않고 많은 인원을 받아들인 미술관 측의 안일한 자세도 문제지만,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에게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종의 경쟁적, 강박적 요인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생존에 필요한 것만을 추구하던 단계를 넘어 우리사회가 이제는 보다 정신적이고 좀 더 다양한 원천에서 비롯된 만족감을 찾는 단계에 와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반갑고 고무적인 현상인 것이다.
허나 문제는 우리사회의 문화적 욕구와 흡인력과 비교해서 이를 충족시킬 만큼의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가 하는 것이고, 전시, 공연 등의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전문인력이 제대로 양성되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으로서는 이에 대해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 시대의 사회, 문화적 현상을 종교적 삶과 따로 떼어서 생각하는 우리신앙인들의 자세이다. 새로운 예술문화를 접하고 거기서 미적 쾌감을 얻고, 이에 대한 창조적 반향으로서 각자의 삶에 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종교인으로서의 삶에 어떠한 정도로 연관을 가지는 가에 대해 진지하고도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서울의 한 미술관이 북새통을 이뤘다는 이야기는, 좀 더 발전시켜 이해하자면, 「성스러움」이라는 종교적 주제가 어떤 식으로 「아름다움」이라는 예술적 표현과 만나게 되는지, 어떤 식으로 우리 내부에 감춰진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지, 또한 반대로 「아름다움」이라는 길을 통해서 종교적 완성을 향해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다룰 여건이 우리사회에 이미 충분히 조성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교와 예술의 합일, 그리고 교회가 시대의 문화를 포용할 필요성을 보여주는 한 예로 12세기에 지어진 샤르트르 대성당을 들 수 있다. 이는 수직으로 높이 뻗어 오른 고딕양식의 대표적 건축물 중의 하나로 신적 초월성을 강조하는 상승의 미학과 더불어, 건물내부를 화려한 색유리창으로 장식하여 충만한 빛을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빛이신 성령을 모신다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개념을 구체화시킨 현대적 감각의 실험적 건물로 평가된다.
가장 훌륭한 장인들의 솜씨와 아울러 신자들의 정성이 이뤄낸, 굳건한 신앙심의 종교적 표현이자, 아름다움을 통해서 그 아름다움의 원천인 하느님을 향해가는 모습을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맞게 구체화시킨 이와 같은 감동적인 예를 우리 사회에서도 더욱 많이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조수정 <소피아·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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