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들의 천사’ 사형제 폐지 위해 혼신”
⊙… 『사형제도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두번째로 한국을 찾은 헬렌 프리진 수녀가 내놓은 첫마디에는 사형폐지운동에 대한 굳은 신념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5월 18일 밤 11시가 넘어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헬렌 수녀는 이후 3박4일간 지칠 줄 모르는 강행군으로 함께 한 한국교회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국회 법사위에 강연소감 보내
⊙… 5월 19일 첫 강연이 열린 대구가톨릭대학교 강당은 1000여명의 대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메워 의미를 더했다. 강연회에서 한 대학생이 던진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사형시키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헬렌 수녀는 『잔인한 살인에 대해 분노와 울분을 갖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하다』면서도 『살인자가 무고한 생명을 죽였다고 해서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살인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분명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학교측은 학생들의 강연 소감을 담은 500여장의 엽서를 국회 법사위에 보내기로 해 눈길을 끌었다.
정치인 “특별법 처리에 최선”
⊙… 헬렌 수녀는 20일 오전 서울 혜화동 주교관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해 사형폐지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교회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이 만남에서 김추기경은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마태 5, 38~45)라는 말 대신 새로운 법을 세우셨다. 만약 남의 눈을 빼앗은 자에게 그 눈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법을 만든다면 아무도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에는 꼭 사형제가 폐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형폐지특별법안」 발의자로 이 자리에 함께 한 열린우리당 유인태, 한나라당 김형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6월 임시국회에서 특별법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교회의 지속적인 협력을 요청했다.
⊙… 20일 오후 2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대성당에서 「21세기의 사형 폐지-가해자와 피해자간의 화해와 용서」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헬렌 수녀는 연쇄살인범 유영철로 인해 가족을 잃고서도 사형폐지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고정원씨를 소개하며 『고씨의 본보기는 신앙인이 하느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라며 『고씨의 염원이 한국땅 전역에 널리 퍼져 생명과 사랑의 세상이 이뤄지길』 기원했다.
⊙… 강연에 이어 헬렌 수녀는 오후 8시 서울 교정사목센터에서 열린 대담회에 참가해 교정사목 봉사자들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진지한 의견을 나눴다. 소설가 공지영(마리아?42)씨를 비롯해 사형수들의 대모 조성애 수녀 등이 함께 한 이 자리에서 헬렌 수녀는 『진실된 관계는 일방적인 게 아니라 서로가 충만되는 상호적인 관계』라고 역설하고 『만남에서 진실성과 지속성을 지닐 때 수용자에게 인간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일깨워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 폐지운동, 일본에도 영향”
⊙… 헬렌 수녀의 오랜 동지로 부모의 뒤를 이어 4남매가 모두 일본에서 40여년간 사형폐지운동에 헌신해오고 있는 후루카와 사유리(49)씨는 이번 방한에도 함께 해 생명운동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그는 『한국이 먼저 사형제를 폐지함으로써 일본 등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사형제 논의가 활발한 한국에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론 의식해 사형 방조해선 안돼”
헬렌 수녀, 사형제도 관련 정치 지도자 결단 촉구
19일 대구가톨릭대학교 강연 후 헬렌 수녀와 고정원씨 등 관계자들은 가톨릭신문사를 방문해 잠시 환담을 나눴었다.
이 자리에서 가톨릭신문사 주간 이창영 신부(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위원)는 헬렌 수녀에게 가톨릭을 비롯한 여러 종파와 신자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사형폐지 입법화를 추진중인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얘기와 피해자 가족을 위한 교회와 정부차원의 사목적 배려와 방안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헬렌 수녀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라면 단순히 그 살인 현상에만 치중해 감정적으로 대처하거나 또한 여론을 의식해 공정성을 잃으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헬렌 수녀는 『사형제도 폐지에 정치 지도자들이 동참한다면 처음엔 여론이나 국민들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그렇지만 더 넓고 장기적인 안목을 갖는다면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요, 생명을 지키는 명예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헬렌 수녀는 피해자 가족과 관련해 『피해자 가족과 가해자 가족을 위해 우리 교회가 소공동체 차원에서 수시로 방문하며 관심과 사랑을 전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이는 엄청난 심적, 경제적 고통을 겪을 이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힘을 얻는데 정말 필요한 사목적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헬렌 수녀는 정부와 교회차원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평화에 대해 알리고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자신의 불이익에 무조건 응징하고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다른 이웃을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고 평화를 나누는 참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헬렌 수녀는 유영철씨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3명이나 잃은 고정원(루치아노?63)씨에게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로서 어디서 그런 용기와 사랑으로 살인자를 용서했는지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하다』며 『살인자에 대한 증오를 오히려 사랑과 희생으로 승화시킨 선생님이야말로 왜 사형제도가 폐지돼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산 증인』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고정원씨는 『헬렌 수녀님의 관심과 환대에 너무 감사하다』면서 『처음에 인간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웠는데 이젠 모든 것을 용서하니까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사진설명
- 김수환 추기경이 헬렌 수녀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 김추기경이 고정원씨를 축복하고 있다.
-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대성당에서 열린 강연회 모습
-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린 강연회에 앞서 한 학생이 헬렌 수녀의 가슴에 환영의 꽃을 달아주고 있다.
- 가톨릭신문사 주간 이창영 신부가 헬렌 수녀 고정원씨와 함께 사형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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