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밉지만 사형만은 안됩니다”
『죄는 밉지만 사형만은 시키지 말아주십시오. 유영철이나 세상을 떠난 내 아들이나 똑같은 소중한 생명을 지닌 사람입니다』
사형제도 폐지 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고정원(루치아노.63.수원교구 과천본당)씨. 그는 다름 아닌 2년 전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손에 노모(85)와 부인(60), 4대독자인 아들(35)까지 모두 잃은 피해 당사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아내의 회갑 선물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마치고 돌아온 고씨는 유씨에 의해 가족이 무참히 살해된 현장을 목격하고 분노에 떨어야 했다.
그런 그가 지난해 7월에는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며 경찰청에 유영철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보내고 현재는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모임이면 어김없이 참석해 사람들에게 사형의 부당성에 대해 호소하고 있다.
『제 가족을 죽였다고 해서 또 다른 생명이 인위적으로 꺾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주어야지요』
하지만 고씨가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범인을 잡으면 아무 이유도 없이 단란한 가정을 파탄시킨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복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범인도 죽이고, 저 또한 죽고싶은 마음뿐이었죠. 이런 생각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가 보통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관용의 마음을 갖게된 건 세례를 받게된 후부터이다. 불교 집안이었던 고씨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함께 성당에 나가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난해 7월 세례를 받았다. 영세 후 고씨에게는 서서히 「용서해야겠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후 「유영철도, 또 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뒤론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적극나서게 됐다.
세례받고 용서 결심
『그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내 가족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로 인해 또 젊은 생명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사형만은 막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고씨는 『신앙을 가지지 않았으면 용서를 못했을 것』이라며 『아직까지 이런 아빠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에게도 이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같은 선처를 호소한 고씨의 탄원서를 읽은 유영철은 자신의 손에 희생된 피해자 유가족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낸 바 있다. 이글에서 유씨는 『저같은 인간을 벌하지 말아 달라 하신 어르신의 간곡함을 읽고 이 인간이 얼마나 못난 짓을 했는지 피눈물을 흘릴 뿐』이라며 속죄의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정원씨가 유영철에게 보낸 편지(법원에 낸 탄원서)
나는 구기동에 사는 고정원입니다. 당신의 손에 우리 어머니와 사랑하는 처, 4대 독자인 아들이 죽었습니다. 사회의 잘못된 현실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부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살아가시며 절대로 죽어서는 안됩니다. 당신이 만약 사형을 당하면 나도 그날이 사형날입니다.
판사님 절대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가족을 대표해서 용서를 빕니다.
2004년 7월 19일
고정원(루치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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