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화는 끔찍한 문화 파괴 초래”
지난 5월 11일 열린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제4차 총회는 「마드리드 선언」을 통해 「문화콘텐츠와 예술표현의 다양성 보호 협약」에 법적 구속력을 첨가하라고 촉구했다. 이것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승인한 「문화는 다른 상품과 똑같은 것으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문화적 예외조항을 다시금 강조한 것이다. 또한 뒤이어 개최되는 제 33차 유네스코 총회(5.31~ 6.14)에서 채택할 「문화다양성 협약」에 대한 최종안을 지원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실제로 자문화에 대한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캐나다의 경우 헐리우드 영화 지배율은 평균 95%를 넘어선다. 브라질의 경우 자국 영화는 겨우 1, 2% 정도의 점유율만 보이고 있다.
이것은 헐리우드 영화가 대부분 미국적 문화로 포장되어 있으며, 문화.예술이란 이름으로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너무도 위험한 현상이다. 사실 헐리우드 영화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왜곡과 멸시, 아시아.아프리카 문화와 사회에 대한 몰이해는 물론이고, 자국의 문화와 패권주의를 영화예술을 통해 세계에 퍼트리고 있다. 다른 문화를 왜곡하여 열등한 것으로 이미지화하는 상징 작업과, 반대로 합리적이며 모범적이고 인간적인 미국문화란 정형화된 모습, 또한 그로 인해 생기는 막연한 동경은 대부분 이같은 문화적 전파를 통해 알게 모르게 형성된다. 문화컨텐츠 산업이란 말이 위험한 이유는 이처럼 문화는 특정 이데올로기에 매여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를 확대재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WTO조차 문화에 대한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문화를 학문적 영역에서 개념화시킨 것은 두 갈래의 뿌리를 지닌다. 먼저 19세기 독일 신칸트주의 계열의 철학자들이 위기에 처한 유럽문명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문화개념에 주목한 것이 하나이다. 두 번째 갈래는 영국을 중심으로 제국주의 팽창과 함께 식민지 정책과 맞물려 발전된 문화인류학이다. 이 경우의 문화 연구는 우월한 유럽문화와 열등한 제3세계 문화라는 전형적인 이분법 도식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곧 「보아스학파」(F. Boas)를 중심으로 결코 어떠한 문화도 다른 문화에 대해 일방적인 우월함을 지닐 수 없다는 반성과 함께 문화상대주의가 대두된다. 그럼에도 19세기 말 선교사를 비롯한 수많은 유럽인들은 계몽주의 이념과 자국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교 문화를 다른 문화에 강요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가 어떠한 지는 우리가 이미 수없이 겪은 사실이기도하다.
문화다양성이란 말이 곧 『모든 문화는 그 자체로 정당하다』는 문화상대주의를 함의하지는 않는다. 문화는 언제나 우리가 「결단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총체적 틀에 근거하여 비판받고 교정되어야 한다. 그 위에서 개별문화의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보편문화의 동일성을 수용해야할 것이다.
문화다양성이 우선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는 문화의 원리를 어느 한 집단이 획일적으로 점유할 때 생길 수 있는 엄청난 파멸의 위험 때문이다. 그럴 때 문화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 각자의 영성적 체험은 즉시 메몰되고 파괴될 것이다. 생명체의 다양함이 무너질 때 한 생물종의 멸종은 물론이고 심지어 생태계 전체가 파괴될 수도 있음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다. 문화다양성이 유지되지 못하면 생태계 파괴만큼이나 끔찍한 문화의 파괴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로 나타날 것이다. 각기 다른 문화의 고유함을 유지하면서도 인간의 보편성과 초월성에 의해 끊임없이 초점이 맞추어질 때 문화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확인하게 된다. 그럴 때 각기 다른 문화는 서로 만나고 교류하면서 상호발전할 것이다. 문화의 복음화든 문화에서 영성을 추구하든, 이 모든 것은 문화다양성의 유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승환 <가톨릭대학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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