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보호받고 존중돼야 한다”
“배아는 생명의 시작, 실험대상 아니다”
사형 등 생명권 법해석에 맡겨선 안돼
5월 18∼20일 열린 가톨릭대학교 설립 15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는 법학·철학, 생명과학·의학, 신학분야의 국내외 석학들이 「생명(Life)」을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특히 첫날과 둘째날에 이어진 주제발표는 현대사회에서 생명이 지니는 의미를 기초학문 분야를 통해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학제간 연구를 통해 물질주의, 상업주의 등으로 인해 인간생명의 가치와 생명윤리의 근간을 호도하고 있는 현실태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법·철학 분야
특히 법·철학 분야에서 발표자들은 세속화에 따른 가치 전도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지적했다.
일본 예수회 호세 욤파르트(Jose Llompart) 신부는 「생명윤리학에서 충돌하는 인간존엄성과 개인의 자유」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생명윤리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도덕적 ethos(인격)」』이라고 전제하고 『과학 발달이 생명을 조작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정당성을 제공해주지 않으며 또 자유와 합의만으로 모든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특히 『새로운 생명은 배아에서 시작돼 죽음으로 끝나며 배아는 완전한 자주성을 가지고 있다』며 『이미 태어난 사람을 의학, 과학적인 실험 대상으로 고려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호세 신부는 정자와 난자 또한 생명은 아니더라도 생명을 잉태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으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정치 및 민주주의의 결정에서는 다수결이 중요하지만 생명 문제는 다수의 의견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으며 생명 조작은 인간 고유의 가치인 「인간존엄성」을 훼손시킨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독일 법규에서 비교해 본 생명의 성성과 본질」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독일 형법학자 알빈 에저(Albin Eser, 알버트-루드비흐대) 교수는 『현대사회는 환경오염과 낙태 등의 고의성있는 생명의 훼손으로 역사상 가장 큰 생명의 위협을 받는 때』라며 『무엇보다 생명의 생성을 하나의 이상과 윤리적인 법칙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에저 교수는 『모든 생명은 신체적 조건이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며 『독일 캐롤라이나법은 모든 생명을 동일하게 보호하는데 큰 영향을 줬다』고 설명했다.
캐롤라이나법은 생명은 스스로의 보호능력과 반응력과는 상관없이 보호되어야한다고 밝힌다. 이러한 방향은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보호조항을 법으로 명시하게 했으며 배아 또한 보호하고 있다.
또 에저 교수는 『독일의 법은 모든 배아연구를 금지하고 있으며 독일의 과학자가 다른 나라에 가서 연구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며 『독일의 대중들은 생명존중과 보호를 위한 법에 훨씬 더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인권법 전문가 윌리엄 샤바스(William Schabas, 아일랜드대) 교수는 이번 발표에서 『누구든 생명권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전제하고 『생명권에 대한 제약 등을 법해석자에게 맡기는 것은 사회가 변하면 가치가 변하는 점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샤바스 교수는 「생명의 권리, 인권법에서 발전된 의미」 주제발표에서 사형제도를 예로 들어 『과거 많은 나라들이 실시하던 사형제도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이제는 사형제도가 생명권에 위배된다는 인식이 널리 파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법은 국가로부터 개인이 보호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인권법은 근본적으로 미성숙해있다』며 『인권이 생명권의 연계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과학기술윤리위원회 위원 송상용 교수(한양대)는 「생명윤리의 기원과 전개」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생명윤리문제는 인간 존엄성과 관련된 본질적인 문제로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고 전제했다.
송교수는 『그러나 한국에서는 생명윤리의 근본이 아닌 「배아」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는 기형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배아」는 생명 전반의 논의사항 중 하나의 이슈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송교수는 『한국에서는 참된 의미의 생명윤리 논쟁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이를 부추기는 언론과 과학주의가 공정한 토론을 어렵게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인간존엄성과 생명권 등은 더욱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것이며 이것은 논의로 결정될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다.
-생명과학·의학 분야
19일 발표에서는 유향숙, 로버트 비츠, 데릴 메이서, 박상철,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생명과학 및 의학전문가들이 유전자 연구, 의학윤리, 노화, 간호 등을 주제로 최근의 주요 이슈와 전망을 점검했다.
인간유전체 전문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유향숙 박사는 「인간유전체 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21세기에는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산물로 얻어진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각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고, 이들의 상호작용 네크워크를 찾아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기능을 시스템적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로써 인간의 생노병사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은 한층 현실화되고 이를 활용해 질병을 예방하고 원인적 치료를 하는 것이 한층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명공학기술의 규제, 국제적 기준의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한 철학가 로버트 비치(Robert M.Veatch) 교수는 『의료윤리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가의 일반화」』라며 『인간생명과 관련해 윤리기준을 전하는 데 의사협회 등이 최종 권위기관이 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전문가들은 전문가로서 선입관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특정분야의 전문가라고 해서 도덕적 판단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에서 올해 초부터 실시된 생명윤리법 운영에 있어서 국가심의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생명공학의 최종적인 윤리를 국가 기관이 결정짓는 것은 맞지 않다』며 『심의위원회는 국가기관의 일부일 뿐이며 국가 정책을 만드는 이들도 전문가의 의견을 버리고 대중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야한다』 말했다.
특히 비츠 교수는 『윤리는 「국가적 합의」에 의해 결정될 부분도 아니고 「문화적 합의」에 의해 결정될 부분도 아니다』라며 『윤리는 그 이상의 것이므로 의료윤리에 관해서도 한 나라나 기관의 판단이 아닌 전지구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국제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생명공학과 관련한 문제는 세계적으로 파급력이 너무도 크고 도덕적 비행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시급히 해결해야할 문제이기에 인간의 한계를 인정해가면서 규범을 만들어가야한다고 설명했다.
태국 유네스코 사무소의 대릴 메이서(Darryl Macer) 교수는 「과거 150년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의학윤리」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자신은 『생명윤리학이 「생명의 사랑」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탐구를 애호한다』면서 『우리는 사랑의 생명윤리학에 자기-사랑(자율성), 타자에 대한 사랑(정의), 생명을 사랑함(비악행), 선을 사랑함(덕행)이라는 네가지 원칙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디어는 분명히 모든 국가에서 생명윤리학적 결정에 영향을 행사하는 주요 요소』라며 『생명윤리학의 토론이 사회의 모든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생명윤리학의 논쟁은 가부장적 봉건제도에서 가부장적 민주주의를 거쳐 민주주의로 변형되는데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화 연구가 박상철 교수(서울대)는 「장수의 현실, 적응과정으로서의 노화」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노화란 불가피하고 비가역적인 생체의 변화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운명론적 인식을 버리고,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적응하고 반응하면서 초래되는 변화라는 인식론적 사고를 가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러한 인식 전환은 『인위적인 노력에 위해 장수할 수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측면에서 고령사회를 대처하는 시각과 정책방안이 개선되어야한다』고 밝혔다.
「말기환자의 영적치유」를 주제로 발표에 나선 미국 로마린다대 간호학과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J.Taylor) 교수는 『모든 인간은 세계관이나 종교관에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영적인 요구를 갖는다』며 『영적인 요구는 자신의 죽음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사람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다루어야할 중요한 요구가 된다』고 강조했다.
또 『영적 돌봄의 치료 효과는 치료를 행하는 사람의 영적 안녕상태에 크게 좌우됨으로 전문직 요원은 자기 자신의 영적 성장에 노력해야하며 우리 자신들의 죽음과 친숙해지는 법과 삶에 관해서도 배워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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