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와 이성으로 진리 깨달아
신앙과 이성 조화된 스콜라학 확립
‘성자의 어머니’ 마리아 공경 강조
『아무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다른 소망을 하늘에서 가질 수 없다. 한 사람의 바람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 될 것이며 모든 사람의 바람과 각 사람의 바람은 또한 하느님의 바람이 될 것이다』(성 안셀모,「Opera Omnis」 편지 112 중).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으로 대표되는 「스콜라학의 아버지」 성 안셀모(1033∼1109)는 계시와 이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하며 아리스토텔레스파의 변증법에서 이용하는 이성주의를 신학에 성공적으로 도입시킨 첫 번째 인물로 꼽힌다.
완전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개념에서부터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한 「독어록」(Monologium)을 지은 그는 이를 통해 후대의 둔스 스코투스, 데카르트 , 그리고 헤겔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신곡」의 작가 단테는 신곡 천국편(Canton XII)에서 태양권 안에 있는 빛과 힘의 영들 가운데 한명으로 안셀모를 언급할 정도였다.
또 「동정 잉태와 원죄」(De conceptu virginaliet peccato originali)와 같은 저서들을 통해 「마리아는 성부와 같으신 성자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 있는 어떤 존재들 보다 더욱 순결하고 티없이 깨끗하며 공경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후대 마리아론에 지대한 공헌을 미쳤다. 그런 이유에서 성 알폰소와 함께 4대 마리아 박사 가운데 한명으로 존경받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 아오스타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안셀모는 클뤼니 수도원과 프랑스의 유명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059년에는 노르망디 베크(Bek)의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공부했다.
양친이 모두 사망한 이후 1060년 수도원에 정식 입회, 엄격한 수련과 병행해서 문법학과 논리학 등 정규 과정을 배웠으며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보에시우스 등 다양한 학자들의 저서를 섭렵하는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1067년 수도원 학교 교장이 된 안셀모는 많은 작품을 저술하고 윤리 종교 교육에 힘씀으로써 학교를 명문교로 발전시켰다.
특히 1078년 수도원 원장이 된 후 수많은 청년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몰려들자 프랑스 영국 등 여러 곳에 수도원을 건설했다. 또 영국까지 명성이 알려지면서 1093년에는 영국왕 윌리암 2세에 의해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됐다.
안셀모는 이때부터 적잖은 정치적 분쟁들에 휘말리며 심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데 무엇보다 그는 성직자들을 직접 임명하고 교황과의 연락을 제한해 온 영국 왕의 교회 직무 간섭에 강력하게 반발했고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 정신을 따라 교회는 자유로워야 하며 오직 하느님 계명의 지배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영국 왕과의 긴장, 그리고 교황의 권위를 위한 투쟁, 세속화된 성직자들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 등에 온 힘을 기울였던 그는 이로 인해 영국 주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등 곤경에 처하면서 결국 영국 성직 서임권 논쟁 여파로 망명길에 올랐다. 두 번이나 망명을 떠났던 안셀모는 그 후 영국 왕과 교황과 한자리에서 협상을 벌였고 여기서 영국 왕에게 충성 서약은 하지만 왕으로부터 서임은 받지 않는다는데 합의했다.
마침내 1106년 영국으로 귀환한 안셀모는 교회의 자유 보호에 계속 힘쓰는 한편 성직자들의 생활을 수도원 생활에 기초한 「수도적 삶」의 방향으로 돌리는데 노력했다.
만년에는 중병에 걸려 사망하기 전 한달 동안 아무런 음식도 먹을 수 없었던 그는 1109년 성주간 수요일 선종했다.
그의 사후 캔터베리 주교좌 성당에 모셔진 그의 묘에는 많은 기적이 일어났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도리데니오 수도원장은 안셀모를 두고 『그의 신앙은 극히 깊었고 예지는 뛰어나고 그의 행위는 거룩하고 마음은 경건했으며 그의 웅변은 유창하고도 생활은 남의 모범으로써 충분하였다. 그는 전력을 기울여 사업을 행하고 끊임없이 성경을 묵상하고 모든 덕에 있어서 출중하였다』고 칭송했다.
안셀모는 철학계에 남긴 업적외에도 뛰어난 영성가였고 또 사목자로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포용하기 위해 애썼다.
신자들을 일깨우기 위해 400여통에 달하는 편지를 쓴 것으로 알려지며 자신의 명상을 기도와 시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철학 및 신학 저서들은 앞서 언급된 대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데 신학적으로 가장 유명한 저서는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는가?」(Cur Deus Homo )이며 이 책은 육화와 구원에 관한 교리 발전에 신기원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성령의 유출론」(De Processionne Spiritus Sancti)은 아우구스티노의 「삼위일체론」에 따라 「성자에게로 부터도 성령이 유출된다」는 서방 교회 이론이 잘 설명된 저서로 알려져 있다.
안셀모는 1720년 교황 글레멘스 11세에 의해 교회 학자로 선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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