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9,9~13
“너로 인해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오늘의 복음 내용은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오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다음 그의 집에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비난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하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오늘의 복음 내용은 예수님 강생의 목적을 분명히 드러내신 말씀이다.
얼마나 우리에게 감사하고 희망을 불어 넣어주시는 말씀인가?
만일에 그분이 선한 사람을 부르러 오셨다면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속에서 헤매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고맙게도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 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 16~17)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는 희망을 갖고 감사와 찬미가를 부르며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업에 너무 바빠서 평소에는 자녀들에게 별로 관심을 못가지던 부모님들일지라도 자녀중에 누가 아프거나 무단 가출을 했거나 사회적으로 무슨 잘못을 저질러 경찰에게 잡혀 갔다면 모든 일을 다 제쳐놓고 모든 관심과 노력을 문제가 생긴 자녀에게 집중시켜 그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평소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못받는 자녀들 중에는 부모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꾀병을 앓거나 가출을 하거나 일을 저지르는 경우도 가끔씩 있기도 한다.
길잃은 한마리의 양을 찾아 헤매는 착한 목자의 예에서, 돌아온 탕자를 환대하는 어진 아버지의 예에서 죄인에게 쏟으시는 하느님의 관심과 사랑을 우리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부활 성야 미사때 부제는 부활초에 불을 당겨놓고 『오 기묘하도다.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 오, 헤아릴 수 없는 주의 사랑, 종을 구원하시려 아들을 넘겨주신 사랑, 참으로 필요했네. 아담이 지은 죄, 그리스도의 죽음이 씻은 죄, 오, 복된 탓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라고 장엄하게 부활찬송을 읊지 않는가? 영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상처받고 어려움 속에서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쏟으시는 아버지의 관심과 자비가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났다.
예수님은 당신을 필요로 하는 모든이에게 모든 것이 되시지 않았던가.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제정해 주심으로써 죄인을 부르시고 구원하시는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는 데에서 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그동안 고해성사를 주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때는 43년만에 고해성사를 보러 온 사람에게 성사를 주었을 때였다. 그는 한번 부끄러운 죄를 지은 후에 부끄러워 고해성사를 못받고 냉담하면서 계속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43년을 기쁨없이 살다가 큰 용기를 내어 나를 찾아와 고해를 하고 사죄경을 받은 다음에 너무나도 홀가분하고 기뻐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사제가 되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제가 된 후에 다른 일은 한가지도 못하고 이 사람 한사람만 고해성사를 주고 사제생활을 끝마친다고 하더라도 나는 충분히 본전을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에 올라가 있는 세리 자캐오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 가시어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면서 자캐오의 집에서 구원을 선포하신 주님,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와 돌에 맞아 죽을뻔한 여인을 구해주시고 그의 죄까지도 용서해주신 주님, 중풍을 고쳐달라고 들것에 들려온 환자에게 중풍치료는 물론이고 그의 죄까지도 사해주신 주님,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 고통중에도 배신자들을 조건없이 용서하시고 아버지께도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시는 주님, 함께 못박힌 오른쪽 죄수를 낙원으로 초대하신 주님, 일곱번 뿐 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고 싶어 하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죄인을 심판하러 오시지 않고 오직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오신 주님이심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도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외쳐보자.
『오 복된 탓이여,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허성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상담〉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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