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든 것을 갖고자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완벽에 이른 적은 없다. 비극은 인간이 그 자명한 진리에 도무지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완벽을 향한 통제되지 않는 욕심과 도달하지 못할 목표에 대한 미련은 자신을 괴롭히는 가장 강력한 「악」이 되어 결국 인생을 피곤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하니 말이다. 모든 것을 가졌어도 자신이 못 가진 한 가지 때문에 불행하다고 여기는 덫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인생의 함정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살펴보게 될 5~6장에서 하만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모르드개 때문에 괴로워하고, 이러한 과욕과 질투, 언제나 최고가 되려고 하는 망상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살육의 원인이 됨을 보여 준다.
5장, 에스델의 초대
5장은 에스델이 이제 더 이상 모르드개에 의존하는 나약한 여자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과 민족 전체의 운명을 책임질 만한 큰 인물이 되었음을 드러내준다. 삼일간의 기도 끝에 자신을 하느님으로 완전무장한 에스델은 죽을 각오를 하고 왕의 뜰에 들어선다. 다행스럽게도 왕은 왕홀을 그녀에게 내밀어 갑자기 찾아온 이유를 묻는데(1~3절), 그녀는 자신의 연회에 왕과 하만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한다(4~5절). 갑자기 등장한 하만의 이름은 이 연회가 단순히 남편(임금)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만을 겨냥한 자리가 될 것임을 암시한다. 초대에 응한 왕과 하만은, 다음 날에 있을 연회에도 기쁨으로 응하겠다고 말한다(7~8절).
5장의 후반부(9~14절)는 하만과 모르드개의 갈등으로 주제가 전이된다. 흡족한 마음으로 왕비의 궁을 나온 하만은 우연히 모르드개를 만나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모르드개를 보자 격분하게 되고(9절), 집에 돌아온 즉시 아내와 친구들에게 모르드개를 처단할 방법을 논의한다. 막대한 재산과 자식들, 임금의 총애, 거기에 왕후의 호의까지, 그의 인생은 모든 것이 장미 빛이지만(12절), 모르드개 때문에 자신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고통스러워 하는 하만에게, 아내와 친구들은 해결안을 제시한다.
『높이 쉰자짜리 말뚝을 만들어』 모르드개를 거기에 처형하라는 것이었다. 「쉰자」는 거의 25미터에 달하는 높이로서, 자신을 대적한 모르드개의 최후를 만인에게 공포하고 다시는 아무도 하만에게 대적할 수 없음을 제시하는 기능을 가진 것이었다.
6장, 반전의 시작
6장에서부터 서서히 이야기의 반전은 시작된다. 우연히 옛 기록을 읽다가 모르드개의 업적을 알게 된 왕은 어떻게든 상을 줘야 겠다는 마음이 들고, 그때 마침 자신이 세운 말뚝에 모르드개를 매달 것을 청하러 온 하만(4절)에게 이를 논의한다. 왕이 자신에게 상을 내리려 하는 줄로 착각한 하만은 구구절절 포상의 내용을 제안한다(6~9절).
10절부터는 이러한 왕과 하만의 「동상이몽」의 결과가 제시되는데 왕은 하만이 제안한 그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모르드개에게 하사하도록 지시하고, 모르드개는 그대로 왕의 영광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10~11절).
열세에 몰린 하만은 『머리를 감싼 채』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 제스처는 그가 얼마나 수치심과 분노, 슬픔에 빠졌었는지를 묘사한다. 고통스러워하는 남편에게 하만의 아내 제레스는 『모르드개가 유다 출신이라면 이제 그에게 대적할 수 없을뿐더러 그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충고한다. 아내의 예견 중, 모르드개의 승리를 그의 민족 전체의 승리와 연결시킨 부분, 이미 유다인들의 승리가 계획되었음을 부각시킨 내용 등은 모두 저자의 가치관과 신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저자는 유다인들에 대한 하느님의 신적개입과 구원의지를 제레스의 입을 통해 다시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동상이몽
같은 언어를 말하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장소에 있어도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랑해서 손잡고 함께 바라본 하늘과 바다지만 그가 본 것이 내가 본 것과 같은 색, 같은 이미지일 수는 없는 것이다. 6장에서 아하스에로스와 하만은 동상이몽의 실체를 보여준다. 상대와 내가 너무 밀착되어 내 생각을 타인에게 무의식적으로 강요할 때 촉발되는 것이 동상이몽이기에 그 결과는 몇 배로 극대화된 배신감과 절망, 치명적 상처를 줄 수 있다. 그 경우 최선의 방법은 그를 내게서 분리시켜, 사랑하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조금씩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운이 좋으면 연민까지 느끼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하만과 모르드개, 하만과 아하스에로스의 갈등,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너무 비슷했고 같은 것을 원했기에, 그러나 불행하게도 꿈은 서로 달랐기에 발생한 역설이며 비극은 아니었을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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