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된 형제애 나눴다
「후우…」 숨을 내뱉자 대기의 열기마저 더한 듯한 뜨거운 공기가 다시 얼굴로 확 끼쳐온다. 불구덩이에라도 들어선 양 한번 달아오른 후 식을 줄 모르는 온 몸은 다른 생각을 용납지 않는다. 자꾸 그늘로만 눈길이 쏠리는 걸 어쩔 수 없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올 양이면 생각은 과거로만 줄달음질쳐, 앞서 걷는 이들의 뒷모습이 없었으면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몇 번이나 동했다 사그라졌는지 모른다.
섭씨 30도를 넘어선 지 오래인 한낮의 뙤약볕 아래 묵묵히 줄지어 걷는 이들은 다름 아닌 20명의 의정부교구 사제들.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찾아온 여름을 생각하면 무모할 수도 있는 길을 자청한 건 그들 자신이었다.
교구가 마련한 제3차 사제 피정을 교구의 역사와 신자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더하기 위해 관할 구역을 도보로 돌아보는 순례로 기획한 이는 교구 스카우트 지도를 맡고 있는 홍승권 신부였다. 사제들의 교구 사랑 의지를 함께 확인하자는 의도였지만 홍신부마저도 의구심을 완전히 떨치진 못했었다. 그러나 홍신부의 염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피정 제안이 있은 지 채 사흘도 지나지 않아 정원이 차버려 피정을 준비해온 홍신부도 놀랄 지경이었던 것.
교구 총대리 조원행 신부를 비롯한 사제들은 5월 27일 의정부 한마음수련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7박8일간의 여정에 들어갔다. 둘째 날 의정부교구청을 떠나 본격적인 도보 순례에 오른 신부들은 임진각을 거쳐 최전방 철책선이 바라보이는 길을 택해 경원선의 종단점인 신탄리역에 이르는 150여km를 걸으며 분단.접경교구인 의정부교구가 지고나가야 할 십자가를 되새겼다.
이들의 발걸음은 출발부터 결코 쉽지 않았다. 도시락 등으로 간단하게 때워야 하는 점심은 그렇다 치고 아침저녁을 손수 해결해야 하는 여정 자체가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그 또한 일정 내내 텐트를 치고 모기 등 벌레와 싸워야 하는 잠자리에 비하면 나은 셈이었다.
남종삼 성인의 묘역을 시작으로 황사영 묘지를 돌아보고 양주 백석성당에 여정을 푼 첫날, 벌써부터 발이 붓고 물집이 잡힌 이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내가 잠시 미쳤지. 어유, 죽겠네』
쉬는 사이 잠시 풀어놓는 누군가의 푸념에 웃음바다가 연출된다. 그러나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는 사제들의 얼굴에서는 자신감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흘렀다.
힘든 여정 가운데서도 사제들은 걸음걸음마다에 기도의 힘을 싣고 새벽길을 나서기 전 함께 봉헌했던 미사의 의미를 되새겼다. 또 텐트를 치고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을 때면 「황사영 백서」를 낭독하며 걸어온 느낌을 나눴다.
박명기 신부(사무처장)는 『같이 걷는 동안 서로에게 힘이 되며 하나의 운명체임을 체험하고 나눴다는 게 가장 큰 성과』라며 『교구 전 사제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런 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섭 신부(창현본당 주임)는 『교구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해나가는 동안 사제로 살아있음을 느꼈다』며 『사제단으로 살아가는 형제애를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고 밝혔다.
기사게재일 : 2005-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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