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애정을 전제로 하는 것”
현대를 다(多)문화 시대라고 한다. 다문화 시대라는 표현은 단순히 다양한 문화 콘텐츠의 홍수 시대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넓은 의미에서 정의할 때 문화는 삶 전체를 의미하고, 따라서 다문화 시대란 우리 인간의 삶 자체가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우리들은 일상 삶에서 어렵지 않게 다양성을 경험하고 있다. 서로 다른 모습과 성향을 지닌 사람들, 각양각색의 삶의 공간, 다양한 직업, 뚜렷하다 못해 종종 충돌을 일으키는 각자의 정치관, 저마다의 종교들…. 몇 년 전만해도 출신 지역이나 학교, 교육수준, 경제 수준 등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같은 가족들 안에서도 다양성을 경험하곤 한다. 불과 몇 달 사이에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우스갯 소리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다양성의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흔히 다름은 대립으로 이어지기 쉽고, 서로의 다름으로 인한 대립은 인류 공동체에 심각한 위험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름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하여 대략 네 가지의 입장을 정리해볼 수 있다.
첫 번째 「배타주의」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입장에서 자기 이외의 다양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자신만이 최고이고 유일한 의미를 지닐 뿐, 자신 이외의 다름은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포괄주의」는 최소한의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그들을 자기중심적인 틀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태도이다. 자신의 폭을 확장시켜 설정하고, 다른 요소들을 자신의 넓은 영역 안에 일방적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세 번째 「상대주의」는 다름을 다름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이다. 자신의 특성이 자신에게 의미를 지니듯이, 각자의 특성을 각자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네 번째 「다원주의」는 모든 다양성을 각자의 의미와 가치 그대로 존중하려는 태도이다. 자신을 비롯한 모든 다양성들이 동등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개체들이고, 이들 모두가 모여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배타주의와 포괄주의가 현대와 같은 다원화 시대에 올바른 태도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서로에 대한 대립의식을 고조시킬 뿐이고, 이것은 인류 공동체 전체의 심각한 비극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주의와 다원주의는 기본적으로 배타성을 지양하고 다름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일단 바람직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상대주의는 자칫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너는 너의 방식대로 살고 나는 나의 방식대로 산다)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고, 다원주의는 지나친 전체성의 강조로 인해 개별적인 고유성이 간과되기 쉽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사실 나와 다른 문화, 이질적인 삶을 어느 정도까지 인정해야 하고 또 실제로 인정할 수 있는지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태도 중 어느 것이 절대적인 정답이고, 어떤 것은 전혀 무의미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 문화는 삶 전체를 의미하고,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을 이해해야하는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다름의 이해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함께 사는 사회라는 원칙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의 존중을 의미한다. 그리고 진정한 존중은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전제로 한다. 결국 다름의 이해는 관심과 애정인 것이다.
오지섭 <서강대 종교학과 대우교수>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