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아는 생명입니다. 우리 모두는 배아였습니다 -
한 생명을 다른 생명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
인간 생명 존엄성 훼손 “심각”
복제 인간 출현 가능성 “불보듯”
배아 대신 성체줄기세포 활용해야
전문-한국교회는 인간 배아 살해라는, 생명윤리에 대한 거센 도전에 직면해, 주교회의 차원에서 배아 연구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음은 그 요지이다.
우리 사회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연구 결과 발표로 열광의 분위기에 젖어 있다. 일부는 성급하게도 산업혁명에 견줄 만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언론매체도 이상하리만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찬양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황우석 교수가 인간배아 복제에 처음 성공하였을 때 쏟아져 나왔던 찬반양론 가운데 생명윤리와 기술적 위험성을 문제 삼았던 정도의 비판이나 문제 제기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연구에 대하여 가톨릭 교회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반대의 입장과 함께 심각한 우려를 표명합니다.
첫째,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인간 생명체인 배아의 복제와 인간 생명체의 파괴라는 반생명적 행위를 수반한다.
인간배아를 복제한다는 것은 인간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 생산해 낸다는 의미로서, 이는 인간 생명을 창조주 하느님의 거룩한 창작품(창세 1, 26~28; 2, 7 참조)으로 믿는 우리의 신앙에 대립한다. 복제된 배아도 분명 인간 생명이며, 따라서 배아에 대한 실험이나 조작은 인간 존엄성을 거스르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복제된 인간배아를 이용하여 치료제, 의약품을 만드는 일이 마치 난치병을 치료하는 일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는 명백히 배아의 파괴를 전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결코 허용될 수 없다.
우리는 인간 생명체를 의학의 발전과 인류의 건강 증진이라는 미명으로 마음대로 처분해 버릴 수 있는 단순한 생물학적 재료 수준으로 격하시키거나, 한 번 쓰고 버릴 생물학적 재료로 취급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반생명적 행위인지 깨달아야 한다.
둘째, 이번 연구로 복제인간의 출현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황교수는 인간복제를 원하지도 않고, 또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배아복제는 누군가에 의해 시도되어 끝내는 복제인간을 출현시키고 말 것이다. 수정 후 14일이 지난 배반포기 단계의 인간배아가 줄기세포로 추출되는 대신 여성의 자궁에 착상되어 복제인간으로 출산되는 것이 난치병 치료를 위한 줄기세포의 성공적인 분화보다도 기술적으로 훨씬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제인간의 출현을 심각하게 염려한다. 그것은 생명을 유린하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처사이며, 인류에게 수많은 재앙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인간배아 복제 연구로 해서 여성들은 자칫 생물학적인 몇 가지 기능만 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배아 생산과 복제를 위해서는 난자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황 교수는 난자 기증자에게 난자 기증 사유와 절차를 충분하게 알려주고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 난자를 기증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석연치 않은 대목도 없지 않다.
기술적으로 난자 채취 과정이 간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숙한 난자를 얻기 위하여 호르몬제의 투여, 난포의 성숙도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 이로 인해 초래될 부작용의 발생, 부작용이 야기시키는 위험 - 예컨대 난소 손상, 영구 불임, 생명의 위험 - 외에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의학적, 또는 윤리적 문제들이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생명체인 배아를 복제하여 질병 치료에 이용하는 것은 결국 인간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한 인간을 다른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행위로서 근본적으로는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이자 인간의 존엄성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라고 단언한다.
의학과 생명과학의 목적은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고 살리는 것이다. 특히 인간 배아는 수정 순간부터 확실하게 한 생명으로 결정된 주체이며, 그때부터 통합적이고 지속적이며 점진적인 발전을 시작하게 되므로, 그 진행 과정의 어떤 단계도 단순히 세포덩이로만 여겨질 수 없다.
따라서 그 주체는 인간 개체로서 자신의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그러므로 인간배아를 연구나 실험용으로 활용하는 행위는 인간을 수단으로 삼고, 인간의 존엄성을 모욕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는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한다고 하여 환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한 생명을 치료하고자 또 다른 생명을 제삼자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희생시키는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과학기술을 결코 지지할 수는 없다. 비록 배아라 할지라도 틀림없는 인간 생명체이다. 우리 모두는 배아였다. 배아줄기세포를 얻으려면 배아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이는 배아 상태의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고 자기 결정권을 수행하지 못하는 생명을 질병 치료의 목적으로 임의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폭력이며 기득권자의 횡포이다. 행위의 목표가 선한 것이라면 목표를 이루어내는 수단도 선해야 한다. 행위의 목표가 윤리성을 지녀야 하듯이 그 수단도 윤리성을 지녀야 한다.
난치병을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는 것만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임상적으로도 효능을 발휘하고 있는 성체줄기세포 치료는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지 않을뿐더러 안전성도 탁월하다. 많은 생명과학자들이 줄기세포가 인류의 건강과 생명에 큰 기여를 할 것이기 때문에 계속 연구,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배아줄기세포 대신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해야 한다고 확신한다.
생명과학은 학문으로서 자율성과 자유를 담보 받기를 원한다. 그렇지만 생명과학 역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자유와 자율성을 확보하려면 그에 따르는 책임과 건강한 양식을 갖추어야 한다. 공명심이나 상업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 책임과 양식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생명과학은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목표로 삼
을 때 그 도덕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과학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눈부신 업적에 자만하지 말고 거듭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고뇌를 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무엇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음에도 해서는 안 되는 경우를 식별하고 기꺼이 포기하는 용단을 내릴 때 생명과학은 신뢰와 지지를 얻을 것이다.
생명과학 분야에 대한 우리 가톨릭 교회의 관심은 지대하다. 왜냐하면 생명과학의 올바른 발전이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도 있고, 동시에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파멸로 이끌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배아를 단순한 세포덩이로 여긴다거나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로 여기면서 파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우리 사회에 죽음의 문화를 급속도로 확산시킬 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결과에 열광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냉철한 이성을 되찾아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2005년 6월 4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위원장 : 최창무 대주교(주교회의 의장, 광주대교구장)
위원 : 정진석 대주교, 이병호 주교, 장봉훈 주교, 안명옥 주교,
권혁주 주교, 김희중 주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
위원 : 최덕기 주교, 최기산 주교, 유흥식 주교, 이용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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