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몸, 주님 도구로 바칩니다”
『오늘도 주님의 도구로 써주소서』
새벽 4시30분, 어두움이 물러갈 기운조차 비치지 않는 이른 새벽에 대문을 나선 임종근(스테파노.수원교구 연성본당)씨는 매일 마라톤으로 출근을 한다. 뛰는 구간은 경기도 시흥에 위치한 집에서부터 직장인 인천시 교육청까지 20여킬로미터로 꽤나 먼 거리다.
첫발을 내딛으면서부터 그는 「오늘도 주님의 도구로 써주소서」를 되뇌이며 기도를 시작한다. 임씨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 기도를 바치며 하루를 열어왔다.
이렇게 매일 마라톤으로 출근하는 임씨의 행적은 직장 안에서도 잘 알려져있었다. 그러나 정작 임씨에게 붙은 별명은 「마라토너」가 아닌 「헌혈왕」. 최근 임씨의 뒤에 어김없이 붙는 호칭이다.
사연을 들어보니 임씨가 마라톤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 또한 헌혈이었다.
헌혈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으로 헌혈자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임씨는 27년째 헌혈을 이어와 모범이 되고 있다.
그의 헌혈 「기록」은 6월 12일까지 무려 247회에 이른다. 지난 1978년 헌혈을 시작한 이래 94년까지는 두달에 한번씩만 허용된 전혈 헌혈을 매년 6회 했고, 95년부터는 연간 최대 24회씩 할 수 있는 혈소판 헌혈을 해왔다.
특히 임씨는 건강한 혈소판이 백혈병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안 이후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마라톤도 시작했다.
『건강이 재산이고 마음 가난한 것이 행복입니다. 작은 일이지만 그 안에서 늘 주님을 더욱 가까이 만나고 있습니다』
6월 12일에는 대한적십자사가 주최한 헌혈자 대축제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수상에 앞서서도 임씨는 『하느님과의 약속을 실천했을 뿐이니 칭찬거리도 아니다』라며 겸손해했다.
임씨가 헌혈을 시작하게 된 것은 첫영성성체 이후부터이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전기용접기사로 근무했던 임씨는 남들 만큼 살지 못한다는 서글픔과 갈등이 많았다. 당시 마음 기댈 곳을 찾아 발길을 옮긴 곳이 집 근처 성당이었다.
『본당 수녀님께서 제게 「몸이 건강하니 그것만으로도 복 많은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하면서 평생 「주님의 도구」로서 헌혈봉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이후 임씨는 수십년간 묵묵히 약속을 지켜왔고, 검정고시로 학업도 지속해 현재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피해가려고 합니다. 사실 헌혈을 위해 바늘을 꽂거나 마라톤을 할 때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고통의 신비」를 체험하고 나 자신을 봉헌할 수 있어 기쁜 마음이 더합니다』
수십년간 이어온 임씨의 나눔은 헌혈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그는 매일 아침 절약한 교통비를 모아 독거노인들에게 쌀을 보낸다. 이 나눔은 그동안 아내도 모르게 실천한 일이라고. 또 얼마 전에는 장기기증서약도 했다.
이 모든 실천들에 대한 평가를 임씨는 한마디로 일축한다.
『단지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그 곁에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순간순간에 충실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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