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는 신자들 앞에서는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그리스도 앞에서는 동료 학생입니다
본문
제가 여러분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이 저를 한없이 두렵게 하지만,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한없는 위로가 됩니다. 사실 제가 여러분의 주교이지만, 또한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인입니다. 「주교」가 직무의 이름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이름입니다. 「주교」가 「위험의 샘」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샘」입니다. … 저에게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제가 여러분과 함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지 제가 여러분의 우두머리로 뽑혔다는 사실이 아닙니다(「설교」 340, 1).
우리는 참으로 여러분의 종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여러분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여러분보다 더 겸손해진다면, 우리는 여러분보다 더 위대해질 것입니다』(「시편 상해」 146, 16).
이곳 강론대에서 우리는 여러분의 스승입니다. 그러나 유일하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 모두는 동료 학생입니다』(「시편 상해」 126, 3).
“사목이란 하느님 백성을 섬기는 것"
사제 생활 한 해 한 해 더해질수록 교만과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해설
약 1600년 전에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가 했던 이 말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제들의 마음을 뜨끔하게 만든다.
「사제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사제신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상식적으로 사제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자기가 똑똑하고 잘 나서 사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제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회와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고 섬기기 위해 봉사의 삶과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참 사제의 삶을 살았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충고는 사제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하다.
사제생활의 햇수가 한 해 한해 더해질수록, 사제로서의 삶이 더욱더 깊어지고 완성되어 가기보다는 오히려 신학생 때 그리고 새 신부 때 가졌던 겸손과 봉사, 사랑과 자비, 이해심과 용서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교만과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차돌보다 더 단단하게 변해버린 옹고집과 좁쌀처럼 좁디좁은 소갈머리만 남아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많은 사제들이 겪고 있는 문제이다. 신자들의 말에 귀 기울기보다는 오히려 신자들에게 군림하면서 권위를 내세우는 사제, 자신의 주장을 마치 하느님의 뜻인 양 강요하는 사제의 모습은 결코 참 사제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 사제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한다.
『올라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밑에서부터 시작하십시오. 성덕이라는 건물을 높이 쌓아 올리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겸손이라는 기초를 먼저 닦으십시오』(「설교」, 69.1.2).
권위란 신자들이 인정해줄 때 권위이지, 사제가 강요한다고 해서 권위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겸손한 삶을 살았던 사제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였다.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야말로 인간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겸손의 극치라는 사실을 정확히 깨닫고, 이를 삶으로 살아낸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목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말한다.
『사목이란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것입니다』(「설교」, 32).
하느님의 백성을 섬긴다. 과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하느님의 백성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사목을 하고 있을까? 사제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사목활동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본당 신부를 가진 신자들은 참으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근본은 겸손의 덕이라는 사실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깊게 통찰한 이도 드물 것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다른 이들 앞에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종이기도 합니다. 사실 봉사한다는 면에서 볼 때, 우리는 다스립니다』(「아우구스티누스 선집」 1, 565).
다스림을 통해서 봉사하고 봉사를 통해서 다스린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을 「하느님 백성의 종」이라고 표현했다.
진리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온몸으로 실천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마디로 겸손의 박사였다.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해서, 사제는 선생의 삶과 학생의 삶을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제는 신자들 앞에서는 가르치는 선생이지만, 그리스도 앞에서는 사제도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배우는 학생인 것이다.
사제가 하느님의 백성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목을 하고, 신자들은 사제를 위해 기도하고 순명함으로써 하느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친교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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