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복지관은 성인 정신지체인들의 캠프준비로 들썩들썩한 느낌이다. 올해 초에 계획을 세운 후 날이 풀리고 꽃들이 하나 둘 앞 다투어 피어나기 시작하면서 복지관에는 매일매일 한 편에서는 힘찬 구령소리에 맞춰 체조를 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점심시간 후에 복지관을 땀을 뻘뻘 흘리며 도는 다소 비만인 친구들의 발걸음 소리가 계속되었다.
올해 캠프는 도보순례 캠프이기에 연초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체력단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꾀를 부릴 법도 한데 작년 캠프가 인상 깊게 새겨져서 인지 싫다고 고집부리지 않고 모두들 열성이다. 작년에는 대천해수욕장에 다녀왔는데, 바다에 가기 전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우리의 자유분방한 친구들이 질서정연한 모습, 성숙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우리 친구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던 것 같다.
바닷물에 띄웠던 고무대야 보트와 진흙탕에서의 머드 팩, 뜨거운 태양 아래서의 물놀이, 캠프파이어의 숙연하고 장엄하고 즐거운 분위기 등등 지금도 그 때의 기억들을 이야기 하곤 한다. 물론 우리 친구들 못지않게 직원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도 염려했던 일 중 하나인 잃어버린 양이 발생되었기 때문이다.
즐거움에 들떠있는 친구들이 모두 차에 올라 환한 미소를 띠며 떠나는 모습을 기쁘게 배웅하고 더위를 참아가며 복지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심상치 않은 전화가 걸려 왔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남자 친구 하나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캠프에 참석한 모든 정신지체인들에게 이름표를 해 주었는데 이름표를 바닷가에 벗어놓아서 혹시 모르니까 썰물이 되면 해양 구조대에 요청해서 바다를 수색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계속 복지관에서 소식을 기다릴 수가 없어 청주에서 대천까지 달릴 수 있는 최대 속력으로 차를 몰아 달려가고 있었다.
다행히 대천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11시경에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안도의 숨을 몰아 쉴 수가 있었다. 바닷가이기에 혹시라도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졸였던 마음의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선 길이니 가서 보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묵고 있는 숙소에 가서 잃었던 어린양을 바라보는 그 감회를 성서묵상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할 수 있었다.
물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라 지루한 생각이 들어 무작정 도로를 따라 걸었던 모양이다. 가다가다 배가 고파 어느 가게 앞을 서성이고 있으니까 주인아주머니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밥을 먹이고는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다행히 집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 연락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경험을 통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꾸준히 반복하여 집 전화번호를 외우게 한 덕분에 이렇게 비상시에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캠프」하면 이 기억이 오래 생각날 듯 하다. 봄부터 그리도 열심히 준비한 이번 도보캠프에는 작년과 같은 불상사 없이 즐겁고 신나는 그리고 추억을 많이 간직하는 아무런 사고 없는 캠프가 되길 소망해 본다.
-이재례 수녀〈청주 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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