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과학자라면 생명 진영에 서야
생명 vs 반생명 대결 구도 접어 들어
"배아연구 반대” 국민 목소리 제대로 반영 되지 않아
황박사, 10년 후로 미루지 말고 지금 토론에 응해야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와 황우석 박사와의 만남에 대해, 일부 언론은 「통과의례」, 혹은 「정면돌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줄기세포 연구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는 생명윤리 논쟁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평소 황 교수의 의지가 반영된 만남이었다. 황 교수는 자신의 연구 성과와 관련된 윤리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피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헤럴드 경제, 6월 16일자)
이번 만남은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관심과 약속,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서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의 촉발, 과학과 의학 기술에 있어서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 합의 등 긍정적 측면에 그 본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칫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크게 한 가지 잘못된 전제와 한 가지 착각이 존재한다. 잘못된 전제는, 배아줄기세포 논란을 「종교 vs 과학」의 대결구도로 파악하는 것이다. 즉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것은 종교가 교리를 바탕으로 정당한 과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발목 잡는」 행위이며, 이는 극단적인 종교 대 과학의 갈등이라고 간주하려는 사고방식이다.
과학은 종교와의 대치 상황을 뚫고 나가야 하며, 항상 「정면돌파」를 해온 황 박사의 「과학」은 종교 지도자를 만나 「난관」에 대처함으로써 「통과의례」를 거친다는 식이다. 그래서 과학은 「통과의례」를 「통과」했고,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이렇게 상황 판단을 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종교 vs 과학 - 잘못된 전제』
첫 번째, 잘못된 전제인 「종교 vs 과학」의 구도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며, 오히려 황 박사 연구팀의, 그 연구를 지지하거나 심정적 동의를 보내거나, 또는 진실을 파악하려는 노력도 없이 무조건적인 찬양을 보내는 일부의 의도된 연출에 불과하다.
일반적 선입견과 달리 종교는, 특히 가톨릭교회는 과학을 배척하지 않는다. 교회가 반과학적이라고 비난할 때 자주 인용되는 갈릴레오 사건 역시 그것이 과학에 대한 종교의 유일한 입장은 아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것이 잘못이었을 때 교회는 과학에 용서를 청했다. 바티칸에는 천문대가 있고, 자연과학학술원도 있으며, 암흑기라 불리운 중세에 서구 과학의 온갖 발명품들은 수도원에서 나왔다.
그래서 종교가 과학의 적이라는 선입견은 본래가 잘못이다. 특히 배아 복제 연구와 관련해서, 종교 대 과학의 대결구도를 거론할 수 있는 것은 2가지가 충족될 때이다. 하나는 종교만이 배아 연구의 유일한 반대자일 때이다. 또 하나는 과학이 모두 함께 입을 모아 배아 연구를 찬양할 때이다.
하지만 배아 연구를 반대하는 것은 종교, 특히 가톨릭만이 아니다. 반대자는 오히려 과학 안에서 조차 존재한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위한 최소한의 여건조차 없었기에 아직까지 그 목소리가 제대로 울림을 갖지 못했다.
이를 증명하듯, 정대주교와 황 박사의 만남 후 언론 보도나, 네티즌의 답글들에서는 황박사에 대한 찬양 일변도의 찬사, 그리고 교회에 대한 비난 일색의 분위기가 조금씩 가시기 시작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배아가 생명이냐 아니냐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문제이다. 오히려 더 많은 과학자들은 생명이 수정과 동시에 시작된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따라서 「종교 vs 과학」의 대결 구도는 배아 복제 연구자와 그 지지자들이 종교에 편협성과 집단주의라는 굴레를 씌우려는 이념적 전술이며, 수사적 전략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민 일반을 종교 및 종교인들과 대치시키려는 의도를 다분히 갖고 있다.
『이제 토론을 시작하자』
두 번째, 황우석 박사가 「통과 의례」를 「통과」했다고 혹시라도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이번 만남은 그 자체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고려해달라는 「요청」이고 「촉구」이며, 나아가 그 본질상 「경고」에 속한다.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두 분의 입장의 변화는 없다. 우선 정대주교의 입장은, 만남 직전 강론 자료를 통해 지적했듯이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중단하고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힘쓰라』는 것이다. 교황청과 한국주교회의가 천명한,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가톨릭의 기본 입장이다.
황박사의 입장은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르침을 받겠다』는 화려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성체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입증되면 배아 복제 연구를 접겠다』는 발언은 결국 『명확하게 성체줄기세포가 우월하다는 것이 입증되지 못하면 배아 복제 연구를 계속하겠다』는 뜻이다.
객관적 비교가 가능할 만큼 연구가 진행된 뒤라면, 이미 『접겠다』는 약속은 무의미하다. 할 만큼 다했는데 뭘 접겠다는 것인가. 이 허망한 약속은 10년 뒤에도 논란이 계속되면 여생 동안 책임지겠다는 말이나, 한국생명윤리학회의 공개토론 요구에 10년 후쯤 논쟁에 나서서 답변을 하겠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적어도 10년은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다. 윤리문제에 대한 진지함을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기본 입장을 재차 확인하되, 앞으로 대화를 통해서 본격적인 윤리 논쟁을 시작하자는 것이 바로 이번 만남의 궁극적인 취지이며 의미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논쟁에는 가톨릭 뿐만 아니라 지금껏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과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국민들이 함께 할 것이다.
「생명 vs 반생명」
가톨릭이 배아 복제 연구를 반대하는 것은, 교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종교적 계명 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과 자연법적 원리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에 「편협한 교리적 입장」에 그치지 않으며, 건전한 시민사회와 뜻을 같이 한다.
따라서 이제는 「종교 vs 과학」이 아니라, 「생명 vs 반생명」의 대결 구도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참된 과학이라면 생명의 진영에 서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10년 뒤가 아니라 지금, 진지하게 토론에 응해야 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