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0,37~42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
오늘의 복음말씀 요지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의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히 우수한 자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스승과 제자를 결합시키는 관계는 일차적으로 그리고 지적 자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주 단순하게 『나를 따르시오』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서에 나오는 「따르다」라는 동사는 단지 예수님의 인격에 귀의하는 것을 표현한다(마태 8, 19 이하).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과거와의 절연을 의미하며, 따라서 참된 제자가 되려면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행동 양식을 따르고, 그분의 교훈을 경청하며, 구세주의 삶에 자기의 삶을 일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마르 8, 34~35; 마태 19, 21; 루가 18, 22).
유다교 학자의 제자들은 일단 율법에 규정된 교육을 끝낸 다음에는 스승을 떠나 독자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으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과는 달리 하나의 가르침에 매이지 않고 그분의 인격에 매여있기 때문에, 자기 부모보다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스승을 떠날 수 없었다(마태 10, 37; 루가 14, 25~26).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는 스승의 운명을 함께 나누기로 불리움을 받았다. 즉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마르 8, 34; 마태 16, 24; 루가 9, 23), 그분의 잔을 마시며(마르 10, 38~40), 마침내 그분께로부터 왕국을 받기로(마태 19, 28~29; 루가 22, 28~30; 요한 14, 3) 불리움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그가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물 한잔만이라도 주는 이는 누구나 제 상급을 잃지 않을 것이나(마태 18, 6; 마르 9, 41) 반대로 이 미소한 형제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단죄될 것이다(마르 9, 42; 마태 18, 6; 루가 17, 2).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유다교의 제자들과 구별된다면, 그것은 하느님 자신이 당신 독생 성자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 때문이다.
유다교의 스승들은 때때로 하느님의 말씀까지도 무효화할 위험이 있는 인간적 전승만을 가르칠 따름이나(마르 7, 1~3),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그들 영혼의 안식을 약속하시는 강생하신 하느님의 지혜이시다(마태 11, 29).
따라서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며, 이와 같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요한 6, 45).
예수께서 강생하신 목적은 인류 구원이지만 구원에로 이르는 길은 넓고 평탄한 길이 아니라 좁고 험한 길이기에 우리의 심신을 무겁게 하고 우리의 발걸음을 무디게 하는 제물이건 명예건 권력이건 직책이건 사람이건 심지어는 자기 자신마저도 집착하지 말고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엘리아는 자기를 따르려는 엘리사에게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먼저 하러 가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이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르고 따르겠다는 요청마저도 거절하시고 『죽은 사람의 장례는 죽은 사람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까지 가혹한 요구를 하셨다.
또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충실히 지키며 살아온 부자 청년에게는 그가 소유한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근심을 하며 돌아간 후에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쉽다는 말씀을 하심으로써 그 청년의 멸망을 예고하셨다.
사도들은 에수님의 부르심을 받자 즉시 가족과 재산과 직업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며 과거의 많은 성인 성녀들도 모든 것을 버리고 사막이나 동굴로 주님을 찾아갔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보다 더 완전하고 안전하게 주님을 따르고자 복음 삼덕의 길을 택하여 자신의 순결을 봉헌하고,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직분에 대한 집착과 소유권을 봉헌하고, 자신의 자유 의지마저 봉헌하여 완전히 빈 껍데기가 되어 홀가분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주님께 봉헌하고 빈 껍데기가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 빈 공간을 당신 자신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에 그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착하고 충실한 길잡이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도 현재 자신과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의 주도권을 주님께 넘겨 드리고 우리는 단지 관리자의 위치로 내려와 주님의 충실한 청지기로 최선을 다하여 삶음으로써 주님의 성실한 제자들이 되자.
-허성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상담〉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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