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김운회 주교)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6월 25일 오후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 천주교회」를 주제로 마련한 심포지엄은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향한 도정에 선 한국교회의 현재와 십자가를 돌아보게 한 자리였다.
"남북대화와 교류에 종교계 적극 나서야"
-기조연설:이화여대 정세현 석좌교수(전 통일부장관)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시작된 햇볕정책은 시작될 당시의 걱정과는 달리 남북간 대화의 물꼬를 트고 교류를 증대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어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해 나감으로써 북한 변화에 대한 기대도 한층 늘어났다.
양국간 경제협력은 눈에 띄게 증가해 현재는 남한 없이는 북한 무역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아울러 이산가족 상봉이 계속 이뤄졌으며 경의선, 동해선 철도.도로 공사는 경제, 문화적 교류뿐 아니라 군사당국자간 협의를 이뤄내기에 이르렀다. 2003년 9월 이후 대령급 군사실무접촉이 30여회에 달했다는 것은 경제협력이 군사접촉까지 이뤄낸 뜻 깊은 변화다. 이는 경제협력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취하던 북한 군부의 입장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북한의 변화는 중국과 베트남, 러시아의 개혁.개방의 모습과 비슷하다. 이처럼 의미가 있는 변화가 단순히 북핵문제 등 정치적인 사안에 의해 무시돼서는 안 된다. 바로 여기서 민족화해위원회와 같은 종교단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북핵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로서 뒤로 넘기고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북한에 어떤 도움을 주고 이를 통일의 밑바탕으로 삼아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지난 8년간 북한은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앞으로 6∼7년 내에 남북관계가 이러한 변동폭을 넘는 개선을 이룰 지도 모른다. 이는 독일 통일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북핵문제 등 「큰 평화」에만 집착해 이제야 비로소 성과를 맺고 있는 「작은 평화」를 소홀히 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평화를 지키는 노력과 함께 「평화를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통일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작은 평화」를 어떻게 하면 큰 평화를 얻는 계기로 만들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며, 인도주의의 기초 아래 북한을 끊임없이 돕고 있는 종교단체가 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통일 지지하지만 준비는 미흡"
■ 발제 1-한국 교회의 북한복음화 준비 실태 :통일연구원 임순희 박사
평신도의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인식에 있어 대체적인 경향은 여섯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사회.주민에 대해 대체적으로 무관심한 편이며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평가 내지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북한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지는 않은 편이나 통일을 대비해 북한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이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셋째, 민족화해와 통일의 당위성 및 필요성에 대해서도 전반적으로 지지, 공감하는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넷째,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해 우리 교회가 주도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다섯째, 대북지원과 관련해서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인식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인도적 지원의 의의 및 중요성에 대해서는 적극 공감하고 있으나 지원방식의 개선과 분배의 투명성 제고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여섯째, 통일과 관련해 북한이탈주민, 이산가족 등에 대한 관심 및 지원의 의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가는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수도자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평신도의 인식과 특별한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다만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함을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확대해 나가자는 자기 성찰적인 문제 제기가 많았다는 점이 달랐다. 아쉬운 부분은 통일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며, 북한지역의 복음화 문제에 대한 인식 공유가 초보적인 수준에서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직자들의 경우, 북한에 대한 인식은 「타자화(他者化)」해서 거론함으로써 자신들의 의식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수인 것으로 추정은 되지만 대북한 경제지원에 유보적인 견해를 지니는 성직자들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타자화」를 통해서 밝힌 것으로 판단된다.
긍정적인 사실은 성직자들이 교회가 통일에 대한 준비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아직까지 이러한 부분이 문제 제기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 생활고로 기복신앙행위 늘어"
■ 발제 2-북한지역의 천주교회 실태 분석·종교인식 연구 :통일부 설충 박사
해방 당시 북한지역에는 5만2000여명의 천주교신자(북한인구 대비 0.6%)가 있었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북한지역 신자 가운데 1만여명이 남하하고 4만여명이 잔류했다. 이들을 망각하고 잃어버린 것이 한국교회가 전쟁으로 입은 최대의 피해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등 남북 대화가 시작되고,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부터 북한은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종교단체들을 부활시켜 활동을 재개토록 했다. 1980년대 들면서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체제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변화에 따라 북한의 종교정책은 크게 바뀌게 된다.
이 시기 천주교는 1988년 조선카톨릭협회(당시 조선천주교인협회)를 발족시키고, 평양에 장충성당을 세운다. 장충성당의 건립은 북한 전역에 있는 천주교신자들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고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기존의 신자를 발견해서 조직화하려는 시도 외에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통해 새로운 신자를 발굴하려는 노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종교지형과 천주교회의 변화양상
북한은 1995년 이후 식량난을 계기로 국경지대의 선교단체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신앙생활을 접하고 개인적으로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생활고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북한주민들이 점을 보는 등 기복신앙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대다수의 북한주민들이 종교 없이 살고 있더라도 기본적인 종교욕구는 갖고 있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대외개방의 지속 추진,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북한에서 개혁.개방이 진행되면서 북한의 종교지형은 대폭 확대될 것이며, 종교단체들은 일정한 자립성 확보가 예상되며 새로운 발전모형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한 정확한 사실 파악과 이해, 그에 토대한 올바른 인식을 기초로 상호 접근하고 대화하여야 한다.
"재정.문화 지원 아끼지 않아"
■ 발제 3-독일 통일과정에서의 천주교회의 역할 :건국대 이인숙 박사
15년이 지난 통일 독일이 시사하는 중요한 점은 정치.경제적인 통합은 물리적인 힘으로 이룰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회.문화적 통합은 오로지 「서로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의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 독일 통일 이전의 가톨릭교회
베를린장벽 설치 이후(1961∼1971년) 가톨릭 신자들의 저항 활동은 더욱 심해졌다. 이러한 동독교회를 서독교회는 순수한 사랑에 의해 물질적으로 도왔다. 여기엔 몇 가지 원칙들이 있었는데, 단 한번도 도와준 돈의 사용처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독교회의 재정지원은 그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으며, 지속적이고 인격적이었다. 놀라운 것은 서독 정부가 교회의 재정적 지원 프로그램을 막후에서 실제적으로 엄청나게 도왔다는 사실이다.
1989년부터 전개된 동독의 평화통일혁명은 개신교도들의 높은 참여율 때문에 「신교혁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개신교회의 사회 보호적 기능을 이용해 활동해 오던 많은 사람들은 교회와 함께 1989년 대규모 군중 시위를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시위 과정에서 개신교회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첫째, 변혁과정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고, 공동으로 결정과정에 참여했다. 둘째, 평화 그룹들을 보호하는 지붕역할을 담당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그룹을 형성하여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 뭉쳐 거리로 나선 것이다. 셋째, 사회갈등 해결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통일 이후 독일에서 가톨릭교회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 활동의 「다원화(Pluralisierung)」를 기하면서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과 그에 따른 활동을 보이고 있다.
교회는 독일이라는 한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구원차원보다는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 소외당한 계층을 도와주고 있다. 이렇듯 통일 이후의 교회는 정치적인 기능이 약화되는 반면 문화적인 기능이 점차로 강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진설명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 천주교회」를 주제로 마련한 심포지엄서 발제자와 논평자들이 종합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임순희 박사, 김훈일 신부(논평자), 설충 박사, 한정관 신부(사회), 이인숙 박사, 주도홍 박사(논평자), 이상재 신부(논평자).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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