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바라보는 무지와 단견들”
온 나라가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성과에 들떠있다. 언론은 언제나 그랬듯이 심도있는 논의 대신 마치 내일이라도 모든 불치병이 치유되고, 과학기술 선진국이 되며 심지어 엄청난 경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듯이 법석을 떨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정부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도 파격적으로 그 연구에 대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현상에 담겨있는 문화제국주의적 문제는 제외하더라도 생명을 바라보는 무지와 단견이 놀라울 정도이다. 이미 수차례 언급된 인간 배아의 생명존엄성과 윤리 논의나, 「생명을 기술공학적으로 처리」한다는 엄청난 폭력을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생명과학 연구는 생명계 전체에 엄청난 파멸을 초래할 수가 있다.
먼저 이들이 지닌 생명이해의 출발이 문제가 된다. 생명의 내적 의미나 36억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주어진 생명의 역사성이 무얼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이들은 생명을 단지 근대의 과학주의(scientism)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기술공학의 측면에서 생명을 장악하려고만 한다.
이는 과학 그 자체로 봐도 일면적인 생각일 뿐이다. 생명은 결코 DNA의 조합이나 유전정보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생명은 그 이상의 존재이다. 그러기에 생명과학은 물론, 생명에 대한 논의에도 존재론적 성찰은 반드시 요구되는 작업이다.
또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도 생물학적으로도 조건지워져 있다. 조건지워진 존재로서의 인간본질과 실존적 한계상황은 결코 벗어나야만 하는 존재론적 결핍이나 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중요한 본질이며, 그를 감내할 때 우리는 이를 넘어 그 이상의 존재로 초월해 갈 수 있다. 자신의 조건성과 한계를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생명은 생명일 수가 없다.
과학지식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관점에서 볼 때 수많은 생명과학자들이 발 딛고 선 문화의 토양이 또한 문제가 된다. 그 문화가 자본주의 논리와 근대철학의 도구적 합리성에 기반해 있다면, 생명학은 결국 기술공학의 도구가 되며, 마침내 생명이 자본을 창출하는 생명산업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뒤틀린 문화에 대해 단지 생명이 존엄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텐가? 그러는 중에도 이들은 여전히 생명을 기술공학으로, 산업으로 이끌어가는데 골몰할 것이다. 이 눈먼 질주의 끝은 어디인가. 이들은 자신이 가려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 문화에 의해 생명계 전체의 파멸이 초래되기 전에 생명과학의 연구 업적을 정당하게 수용하고 그 연구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거기에는 생명에 대한 과학주의적 사고와 자본주의적 관점에 대한 반성이 포함될 것이다. 과학이 가치중립적이란 허구를 벗어나야 한다. 생명을 끝간데 없는 자본의 논리로 몰아가는 횡포를 막아야 한다. 치료목적이란 말에 담긴 자기존재 부정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해야 한다. 인간 생명까지도 도구적 이성과 자본의 대상으로 환원시키는 문화를 교정해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과 윤리에 대한 교회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불타는 곡마단의 참상을 외치는 광대의 웃음거리로만 전락되어서는 안된다. 더 늦기 전에 생명에 대해 존재론적이며 초월적인 이해와 해명이 담긴 생명의 문화, 생명의 학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의 아름다움과 가치, 생명의 역사성과 존재의미를 드러내고, 그로써 생명이 지향하는 초월적 의미를 밝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학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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