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만 되면 예외 없이 다가오는 지옥(?)이 있다. 바로 학기말 시험이다. 거의 지옥이 따로 없을 것 같은 시험기간을 지내는 학생들을 보면,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어, 솔직히 내 과목만이라도 시험을 면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오히려 내게는 시련이고 「시험」이다. 다른 교수님들과 상의 없이 나 혼자만 결정할 수는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시험 때가 되면 내게도 예외가 아니었던 시험지옥이 기억난다. 도무지 자부심이나 자신감 같은게 없는 나 같은 사람도, 그런 시간들을 「죽지 않고」 견뎌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왠지 스스로가 대단하고 비범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그렇게 모두, 각자의 시련과 고통의 순간들을 견뎌온 사람들이다. 죽지 않고 어제를 살았으니 대견하고, 살아서 오늘을 맞았으니 비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배자들의 박해가 극에 달했던 시기에 살아남아서, 남의 나라 땅의 재상까지 되었던 다니엘의 비범함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다니엘서는 그 비결을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신앙」에 두고 있다. 오늘 소개할 다니엘서의 저자 문제는, 그런 절대적 믿음 때문에, 그어떤 폭력의 상황에서도 비틀거리지 않고, 가장 지혜롭게 삶의 평정을 유지했던 지혜로운 인물들 「마스킬림」을 소개하고 있다.
가명(假名)성
지난 주 우리는 다니엘서의 저자가 기원전 2세기경의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다니엘서의 「나」를 왜 6세기의 인물 다니엘로 규정하였는지가 궁금해진다.
답은 간단하다. 이미 지혜문학과 시문학을 소개하면서 「가명성」 이라는 기법을 설명한 바 있는데, 이는 작품의 권위와 공신력을 더해주기 위해, 그 방면에 명성을 날리던 전설적 영웅들의 이름을, 책의 저자로 표기하던 기법이었다.
다니엘서는, 고대로부터 「현자」(지혜로운 자)의 대표적 인물로 여겨지고 있던 「다니엘」을 자기 작품 주인공의 이름으로 규정하고, 이로써 작품 전반에 대한 「지혜적」 특성을 전격 부각시키고자 한 것이다.
진짜 저자는?
그렇다면 이렇게 가명성을 작품에 도입시켜 자신을 다니엘이라고 소개한 「원래의 저자」는 누구인지가 문제된다. 많은 학자들은 다니엘의 저자를 「하시딤」이라는 그룹에 속했던 사람으로 보고 있다.
이 그룹은 율법준수를 강하게 주장하던 경건파 사람들이었는데(1마카 2, 42 7, 12~13), 2마카 14, 6에는 이들이 때로는 군사적 행동도 감행했던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군사적 캐릭터는 다니엘서가 강조하고 있는 「비폭력적 태도」와 상반된 것이기에, 콜린스(J.J. Collins)같은 다니엘서 연구의 대가는, 기존의 하시딤 가설에 반기를 들고 있다.
최근 학자들은 다니엘서의 저자가, 11, 34과 12, 3 등에 언급되어있는 「마스킬림」의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다니 1, 4 11, 33~35 12, 3 12, 10이 제시하는 내용에 의하면, 그들은 자신을 정화하고 정련함으로써, 박해 속에서 주어질 수 있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인내하던 사람들이었고, 그러므로 폭력과 혁명의 그림자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평화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이 보여준, 비폭력적 저항과 그것을 감수하게 한 힘은, 박해와 고통의 현실 속에 함께 하고 계신, 하느님 현존에 대한 확신이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고통스런 현재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그리고 불의에 찬 현실에 동요하지 않고 담담히 그 환난을 감수하게 하던 힘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마스킬림의 모습은 유배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담담히 견뎌낸 지혜로운 다니엘의 모습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마스킬림은 「폭동」과 「혁명」이 시대의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님을 알고 있던 이들이었다.
다니엘서에서만 「마스킬림」이라는 이름이 발견되고, 성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복수명사 형태로)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대중적으로 활동했던 그룹이 아니라 소수 정예의 엘리트 그룹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뒤집힌 승자
평화적 태도나 비폭력적 모습은 「인격」도 아니고, 「체질」도 아니며, 「스타일」도 아니다. 그것은 신앙 때문에 가능한 일종의 「은총」이요 「선물」인 것이다. 무력항쟁, 폭동, 살육, 불의, 모함….
이런 것들은 비단 다니엘만이 당면해야 했던 문제는 아니었다.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도 이 모든 지옥(?)은 언제나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에서부터 우리를 비폭력적이게, 담담하고 평화롭게, 평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믿음」이다.
다니엘서는 그런 신앙의 자세야 말로 최후의 승자가 되게 하는, 가장 지혜로운 비결임을 알려준다. 이 무더위 속에 주어진, 한줄기 빗줄기 같은, 시원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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