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이 신비로운 이유는 「나만 알고 있다」는 제한성 때문이다. 너도 알고, 그도 알고, 그녀도 아는 내용이라면, 그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다니엘서는, 「묵시문학」이라는 특별한 장르로 규정되고 있는데, 이 문학의 가장 독특한 성격은 바로 이런 「비밀성」에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묵시문학의 등장배경
묵시문학은 「위기」라는 특정한 상황에서 배태된 신학적 대응이었다. 즉, 묵시문학은 평화로운 서재나 연구실에서 사색과 탐문을 거듭하다가, 혹은, 성전에서 감미로운 관상에 잠겨 있다가, 돌연히 미래에 대한 환시를 보게 되고, 이를 낭만적 문체로 써나간 일종의 「안방 문학」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묵시문학은 당시의 독재와 억압, 불평등에 대한 주체적 대응이라는 시대적 대의가 산출한, 일종의 「사회-정치-신학의 총체」였다고 할 수 있다. 인간 모두를 하나의 통치이념 안에 구속하려는 이데올로기는, 「정복자에게 충성!」이라는 획일적 명분만을 내세워 폭력과 불의를 자행했고, 이러한 무력 앞에서 유다인들의 신앙과 하느님은 절대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말해질 수 없었던, 아니 말해져서는 안 되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말해져서는 안된다고 강제된 것들보다 더 말해져야 할 이야기들이 있을까? 삼엄한 규제 속에 신앙과 하느님에 대한 소통이 갇히게 되자, 그들은 일반적 언어가 아닌 그들만의 언어, 상징, 꿈, 환시라는 장치들을 통해 소통을 모색하게 된다. 같은 신앙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해독해 낼 수 없는 언어로, 말해질 수 없던 것을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니엘서의 제작 배경
바로 이러한 이유가, 유다 묵시문학의 정수라고 간주되고 있는 다니엘서를 그저 한 청년의 우여곡절 많던 무용담 정도로만 이해해선 안 되는 이유이다.
이 아름답고 화려한 이야기 뒤에는, 박해 받던 당시의 사람들 사이에 유포 되어야할 하느님의 메시지가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고, 다니엘서 이해의 관건은 바로 이 숨어있는 밑그림을 읽어내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하느님의 지혜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는 다니엘의 모습은, 지혜롭고 유일한 통치자이신 하느님의 지배를 연상하게 하고, 그들이 희망했던 메시아 왕국에 대한 갈망을 떠올리게 한다.
즉 삶의 의미를 상실한 잔인한 박해 속에서 그들은, 다니엘이라는 이상적 인물을 통해 하느님의 통치를 의식 안에 강하게 무장했던 것이다.
여러 분파들의 탄생-유다이즘의 성장
이러한 정치-종교적 박해는, 당시 이스라엘의 선각자들에게 뜻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주체적인 그룹을 형성하게 하고, 이러한 그룹은 일종의 운동 형태(movement)로 성장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유다이즘」과 그 여러 분파들의 탄생이었다. 이 그룹들 안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에세네파 등이 속해 있었고, 또한 무력항쟁으로 투쟁에 나선 마카베오 집안도 끼어 있었다.
다니엘서 역시 이러한 반응들의 한 부류라고 할 수 있는데, 다니엘서가 다른 운동들과 비교되는 점이 있다면, 그 어떤 대응들보다 「비폭력적」으로(글을 써서) 대응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들은 독재의 무력에 또 다른 무력으로 맞서는 것은 결코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음을 확신했던 사람들이었고, 따라서 다니엘서 안에는 그 어떤 폭동, 혁명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오히려 「지금, 여기」의 현실 안에 숨어있는, 그러나 반드시 존재하는 하느님의 주권을 초월적 시각으로 간파하고, 그러한 신앙적 전망으로 지금의 모든 시련을 견디어내자는 「종교적-비폭력적 대안」을 일종의 문학 양식으로 제시했던 인물들이었다.
다니엘서가 제시하는 다니엘의 태도는 폭력이나 반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련과 시험, 오해와 음모 속에서도 다니엘은, 하느님 친히 함께 계셔주심에 대한 철저한 신앙만을 유일한 도구로 삼았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비폭력적 자세와 전망을 저자는, 그 시대의 어둠을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지혜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싸움에서 손을 떼는 법
싸움은 둘 다 똑 같기 때문에 일어난다. 한 쪽이 조금 여유 있고 비어 있어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싸움까지 가지 않아도, 서로는 소통이 가능하다. 다니엘이 제시하는 비폭력적 노선은, 폭력적 상황을 벗어나는 유일한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피터지게 싸워야 뭔가 폼이 난다고 생각하는, 격투기 전문선수들이 아니라면, 이제 마음을 비워둘 때이다. 마음이 비워져야 누구든 타인이 들어와 소통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덥다. 그러고 보니 마음이 필요 없는 것으로 꽉 차있어서 더 더웠나보다.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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