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토론에 나설 때이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문제
돈과 명예 권위와 명분 등은 버려야
한동안 폭풍처럼 밀려왔던 파고를 저지하려는, 생명윤리에 대한 일련의 재성찰의 목소리들이 조금씩 나타나긴 하지만, 「황우석 쓰나미」의 위력은 여전하다. 이는 초반에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의 전폭적인 뒷받침 하에 여론몰이에 있어서 완전히 기선을 제압했던 복제 연구자들의 위세가 워낙에 거셌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배아 복제 연구의 윤리적 측면에 대해서 언론이든 여론이든 최소한의 문제제기는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계의 배아줄기세포 반대에 대해서 『쓸데없는 딴죽』으로 매도하는 언론과 여론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소간의 위안을 삼을 만은 하다.
문제는 이제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한 방향으로만 무한정 쏠려가던 의견들의 향방이 이제는 서로 부대끼기 시작한 만큼, 이제부터는 좀 더 진지하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논의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종교계 뿐만 아니라, 건전한 의식과 과학정신을 지닌 시민들과 그 단체들을 중심으로 하는 배아줄기세포 반대 진영과 여전히 배아복제연구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배아줄기세포 연구 과학자들과 산업계, 정부 정책 당국자들 모두에게 공히 요구된다.
이제는 여론몰이나 언론플레이, 혹은 구호나 성명서가 아니라 과학과 윤리의 영역에서 깊이 있는 학문적 토론이 벌어져야 한다. 이 토론은 더 이상 회피할 수도 없고 회피해서도 안된다. 상대를 기만하거나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미봉책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지금까지의 논쟁만으로도 찬반의 진영은 서로 전혀 물러설 뜻이 없음이 충분히 증명됐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토론의 시작을 위해서
올바른 토론을 위해서는 먼저 성실한 자세가 요구된다. 서로의 시각차가 존재할 때,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는 토론에 진지하고 전폭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임할 것과 피할 것을 하나하나 계산해서, 사안별로 진퇴를 거듭해서는 안된다.
둘째, 투명해야 한다. 인간 생명이라는 숭고한 문제를 담고 있는 이 사안은 결코 얄팍한 전술로 대응할 문제가 아니다. 종교인이든, 시민이든, 과학자든, 혹은 정부든, 상대를 기만하거나 물밑 작업으로 토론에 영향을 미치려 해서는 안된다.
셋째, 원칙에 충실하되 유연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물론 원칙은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인간 생명은 존엄하다』라든가, 『과학은 발전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변함없는 원칙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인간 생명인가, 생명의 존엄성은 어떻게 수호해야 하는가, 혹은 과학 발전은 제한이 없는가 등의 문제는 논의의 진행에 영향을 받는, 가변적인 입장들이다.
넷째,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를 떠나 공동선을 고려해야 한다. 명예나 돈, 권위나 명분 등을 막론하고, 이해관계에서 철저히 떠나야 한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답해야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볼 때, 앞으로 논의의 향방은 자명하다. 어떤 자리가 됐든 토론에 임해야 한다. 토론, 때로는 격론을 통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해하고 설득하려는 과정이 결여된다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좀 더 노골적으로, 비판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황우석 박사 연구진은 가장 먼저 생명윤리학회의 12개항의 질의에 답해야 한다. 『만날 용의가 있지만 토론 형식이 아니라 강연 형태가 돼야 한다』는 식의 면피성 발언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자신의 연구에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토론에 나설 일이다. 어찌 토론이 『소모적』일까?
정부의 이 사안에 대한 솔직하고 공정한 입장 표명과 그간의 경과에 대한 투명한 공개도 필요하다. 그간의 정부 정책 추진은 수많은 의혹을 야기해왔다. 생명윤리법 입법 과정에서 애당초의 법 제정 방향이 슬그머니 후퇴한 이유에서부터 시작해서, 극히 일부 생명과학자들에게 정부 지원이 과학자들 사이에서조차 지적될 만큼 과도하게 이뤄진 배경, 배아 복제 연구 계획에 대한 정당한 심의 과정 여부 등등 장막에 가려진 부분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투명한 배경 속에서는 토론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배우고 익혀서 토론에 참여하자
답해야 하는 것은 배아 복제 연구 반대자 측도 마찬가지이다.
침묵하고 있던 과학자와 종교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한다. 특히 교회는 이 토론에 앞장서야 한다. 주교회의의 성명이나 극소수 교회 지도층의 산발적인 의견 표시에 그쳐서는 안된다.
수많은 신자 과학자와 의사들, 건전한 시민 의식을 지닌 선의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모두 나서서 토론의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과학적인 지식이 모자라고, 교회의 가르침이 낮설다면, 배우고 익혀서 토론에 나서야 한다.
앞으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정당한 것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각종 세미나, 심포지엄, 공청회 등이 속속 마련될 것이다. 아직 계획이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분주하게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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