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통해 은총을 얻습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저를 새 아빠라 여기며 살아가는 한 아이는 하루 종일 새 아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서 바쁘게 움직입니다. 요즘은 나병 치료중에 생기는 통증으로 인해 고통스러워 합니다. 성하던 오른손도 감각이 점점 없어지면서 아파합니다. 「앞으로 손을 쓸 수 없게 되기 전 지금이라도 아빠일을 도와준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슴이 매이고 눈물이 한없이 나옵니다』(중국 인애원 홈페이지 게시판 신동민 신부 묵상글 중).
2000년 중한 합작으로 개원
중국의 서부로 가는 교통중심지(실크로드의 출발점)인 시안에서 동남쪽으로 150km 떨어진 섬서성 상락시 지역은 민가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외진 산골이다. 중국 정부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빈곤 지역으로 오래 전부터 나환우촌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한센씨병(나병) 전문 요양원 인애원(仁愛院) 원장인 신동민 신부(작은형제회). 최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대중 문화계 한류 열풍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어찌 보면 중국 내 사회복지계의 한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듯하다.
1998년 1월 16일 중국나사협회 소개로 이 지역을 처음 방문한 후 나환우들의 열악한 처지를 보고 그대로 눌러 앉기를 결정한 신신부는 이때부터 현지 나병사업의 현황 연구를 시작, 2000년 중한(中韓) 합작으로 현 인애원을 개원하고 현재 100여명 규모의 중국 최고의 나환우 복지 시설로 키워냈다. 수도자 신분이면서 합법적 법인 대표를 맡고 있는 것도 한국 교회 차원에서는 처음이다.
개원 5주년을 맞고 있는 요즘 지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나병 환자들을 위해 낯선 이국 땅을 찾아온 사랑의 대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 국영 TV, 위성 TV와 북경 청년일보 등 주요 매스컴에서도 『잘 사는 나라 한국의 청년이 오지 산골에 와서 가족들도 돌보지 않는 나환우들을 보살피며 자신의 시간을 바치고 있다』고 집중 보도했고, 이러한 신신부의 활동 소개는 나환우 복지 개선 문제의 공감대를 넓혀 실질적 정책 결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개원 당시 전화선조차 없었던 인애원에는 이제 전화선과 인터넷 전용선은 물론 이동전화 기지국까지 세워지는 등 정부의 관심이 미치고 있고 그간 사회복지 시설 견학을 위해 중국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는 등 양국간 교류에도 적잖은 계기를 마련했다.
『인애원 자리는 상락원이라는 나환우 요양원이었는데 도착 당시 환우가 10여명에 불과했어요. 그때부터 2004년까지 섬서성 전역을 찾아다니며 숨어 지내는 환자들을 찾아냈지요. 200여명 정도였는데 그중 90여명을 인애원으로 모셔왔어요』
신동민 신부에게 나환우들은 성소(聖召)의 꿈을 이어준 끈이라 할 수 있다. 일반 대학교를 다니던 그는 나환우 촌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부르심을 느꼈고 그때부터 평생을 그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희망을 지녔단다.
작은형제회가 운영하는 산청 성심원 등에서도 봉사를 했던 그는 그같은 인연속에 입회를 결정했고, 1996년 사제서품 후 1년이 채 안된 상태에서 부산 구라마리아회를 통해 중국과 연결이 될 수 있었다.
당시 서품 연차가 적은 사제를 단신으로 중국에 파견한 것도 수도회 차원에서는 큰 결단이 아닐 수 없었는데 신신부는 이러한 모든 상황을 나환우들과 함께 살도록 배려해 주시는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애원에서 펼치는 사업은 장애 정도가 심한 독거 노인 환자의 의료 복지를 비롯 양성 환자에 대한 치료 생활보조, 나환우 자녀들의 기숙사 생활 및 학비보조, 완치자들의 자립 사업 추진 등이다.
후원회원 지원이 큰 버팀목
운영은 많은 사회사업 시설이 그렇듯 후원회원들의 지원이 큰 버팀목이다. 특히 한국나사업회 릴리회 등 한국의 나환우 관련 후원단체들과 현지 가톨릭 공동체들의 꾸준한 관심과 배려는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최선을 다해 그저 달려오기만 했다는 그는 『이제 인애원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셈』이라고 말하고 『조만간 후임에게 책임 자리를 물려주고 또 다른 어려운 이들을 찾아 볼 생각』임을 밝혔다.
「이제 중국사람이 다 된 것 같다」며 스스로 「중한파」임을 자처한 신동민 신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이웃 나라의 어려운 이들을 도와준다는 차원에서 중국을 대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혜자로서의 자세가 아니라 그들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은총과 회개의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릴 것입니다. 나환우들을 사랑하고 봉사함으로써 중국 땅에서 인류애를 실천하게 되고 이로써 중국 사회가 소외된 이들이 없는 건강한 사회가 되는데 자그마한 기여를 하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이것이 미래에 한국 교회와 중국의 관계 증진에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도움주실분=국민은행 293801-01-140137, 재)프란치스꼬회
기사입력일 : 200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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