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신법
교회가 영원히 지켜할 진리
로마 유학 때의 일이다. 추석을 맞아 교포신자 집에 저녁을 초대받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집주인이 「화투」를 꺼냈다. 그런데 고스톱을 하기도 전에 두 시간이나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고스톱 규정(?) 내지는 법칙에 대한 「합의」를 위한 토론이었다. 오랜 토론 끝에 결국 「합의」를 본 사람들만 고스톱에 참여했다. 「합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교회는 「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특히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진리는 교회가 2000년 동안 지켜온,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켜 나가야 할 진리중의 진리이다. 이 진리는 자연법, 곧 신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나아가 진리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정치적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의 영역은 인간이 함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합의」의 영역이 아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인간 생명을 존엄하지 않다고 합의했다』고 해서 인간 생명이 존엄하지 않은 것도 아니요, 또 『인간 배아는 단지 세포 덩어리일 뿐이다. 따라서 배아를 조작, 실험, 복제할 수 있음을 합의했다』고 해서 인간배아가 생명이 아닌 것이 아니다.
이름난 생명공학자 몇몇이 우겨댄다고, 정부 권력으로 밀어붙인다고, 몇 사람이 짜고 합의한다고 해서 진리가 진리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는 오로지 진리 일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회단체들이 있다. 이러한 단체들은 「합의」만 이루어지면 주저함 없이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적 합의는 실정법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형법, 민법, 도로 교통법도 그때그때 필요성에 의해서 개정하기도 하고 아예 없애버리기도 한다.
몇몇의 합의로 국민을 우롱
그런데 문제는 ‘합의’를 ‘진리’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국민들 대다수의 의견을 모아 ‘합의’를 했다고 해도, 여론조사를 통해 의견이 한 방향으로 모아졌다고 해도 그건 단지 ‘합의’일 뿐이지 결코 ‘진리’는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가 가지는 가장 큰 단점은 바로 ‘다수결의 원칙’이다. 무조건 다수결의 원칙 내지는 대중의 선호도만 가지고 법, 정책을 결정한다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의 영역’과 ‘합의의 영역’을 분명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진리를 버리고 합의만을 따르게 되고, 그 합의가 진리인양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가끔 몇몇 정책 책임자들이나 과학자들에 의해 이런 일들이 발생한다. 특히 최근 황우석 박사의 ‘난치병 환자를 위한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이 그 사례다. 정부 부처와 황우석 박사 연구팀은 물론 언론까지 합세하여 마치 인간 배아가 생명이 아닌 것처럼 속이고 있다. 인간배아가 생명이 아니라, 세포덩어리일 뿐이라고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그것이 마치 진리인양...
사실 인간 배아에 대해서는 생명공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합의할 사항도 아닐뿐더러 생명공학자들 간에도 전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배아가 생명이 아닌 것처럼 취급당하고 있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과연 인간 생명의 영역이 그저 합의의 영역이란 말인가? 인간생명이 고스톱의 규정 따위와 동일시 될 수 있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진리는 진리일 뿐
그들이 아무리 인간 배아가 단지 세포 덩어리일 뿐이라고 우겨도 인간배아는 인간생명일 뿐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거짓이 진리를 이길 수는 없다. 따라서 진리는 그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는 것이다. 진리는 그 누구와도 합의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오로지 진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러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요한 18,37)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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