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사회복지를 맡으면서 나의 하루는 한센 장애인 생활시설인 다미안의 집에서 매일 아침 7시에 어르신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면서 시작된다. 어르신들을 정성껏 보살펴 드리는 성모영보 수녀회 수녀들과 함께 우리는 아픔과 상처를 지닌 한센 가족들이 이곳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하면서 신앙을 통해 위안 받고, 기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린다.
저녁을 마치신 어르신들이 마당 의자에 앉아 담소라도 나누는 모습을 볼 때면 얼마 전 돌아가신 미카엘 할아버지가 가끔씩 생각난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할아버지는 어스름이 내리는 한길가의 버스 승강장에 앉아 계시곤 했다. 『버스 타고 아들집에 한번만이라도 가고 싶다』며 지나가는 버스 꼬리를 눈으로 따라가던 할아버지…. 길가에 나가 계시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지나가는 차에 사고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아들을 불러 사정을 이야기 했지만 집에 모시고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밤에 모시고 가서 남들이 보지 않는 새벽에 모시고 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사정해 보았지만 결국 할아버지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얼마 후에 미카엘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한동안 한센병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한센병을 천형이라고 생각했고, 일단 걸리고 나면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한다. 가족 중에 한센병력자가 있으면 혼사길이 막히고 사회적 차별과 냉대를 받기 때문에 스스로 가족을 떠나야 했다. 그러다보니 자녀들이 결혼할 때는 그들은 살아 있으되 「죽은 자」로 소개되고, 고령화와 장애 때문에 혼자 힘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도 자녀들에게 기댈 수가 없게 된다.
이러한 차별과 사회적 격리는 한센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 하겠다. 한센병은 이제 좋은 치료방법과 의약품의 개발로 더 이상 장애를 일으키는 후유증이 없고, 전염도 되지 않는다.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한센병력자들은 이미 치료를 다 받았고, 전염의 가능성도 없기 때문에 한센병자라고 부르기보다 한센병으로 인한 후유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들은 버림받는 격리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가까이 끌어안아야 할 살아있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미안의 집 어르신들은 이 세상의 고통을 다 참아 받으셨기 때문인지 돌아가실 때는 고생하시지 않고 너무도 편안한 모습으로 임종을 맞으신다. 어르신들의 임종을 맞아 병자성사를 드릴 때면 하느님께서 한센 가족들의 임종을 특별히 보살펴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서 그토록 고통을 많이 받았으니 하늘 나라에서 편히 쉬게 해주실 것이다. 산그늘이 우리집 마당을 덮을 때면 먼저 가신 마카엘 할아버지의 웃음도 보는 듯 하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 28).
최숭근 신부〈안동교구 사회복지회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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