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의지가 이성보다 더 우월”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표 중 한 명
천국의 본질은 사랑에 있다고 주장
『13세기의 귀재, 중세 사상을 종합하고 새로운 철학을 가능케 했던 토마스 아퀴나스에 필적할 만한 영국 경험론, 독일 관념론 뿐 아니라 모든 사상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
1993년 3월 2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둔스 스코투스(1265/1266~1308)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더불어 중세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꼽힌다.
「정교한 박사」(Doctor subtilis)라는 호칭을 지닌 그는 성모 무염시태 교리를 고전적으로 옹호한 선구자로서 지식보다 사랑의 우위성을 강조하고 천국의 본질은 하느님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사랑에 있다고 주장했다.
불명확한 생애
그의 생애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19세기 프랑스 역사가이자 철학자 에르네스크 르낭은 중세 위대한 사상가 중 둔스 스코투스 만큼 생애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드물다고 했는데 그만큼 둔스 스코투스의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기에는 자료들이 충분치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특히 50년 사이에 그에 관한 꾸준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많은 사실들이 발견되었는데, 14세기 초 필사본에는 둔스 스코투스가 작은형제회 소속으로 던스 출신의 스코틀랜드 사람이었고 캠브리지 옥스퍼드 파리에서 활약하다 쾰른에서 사망한 사실이 발견됐다.
1265년 12월 23일에서 1266년 3월 17일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둔스 스코투스는 스코틀랜드의 막스톤(Maxton)에서 출생, 12~13살이 되던 1278년 둠프리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련소 입회 법적 연령인 만 15살이 되면서는 착복식과 함께 공식적으로 작은형제회에 입회했고 1291년 사제품을 받았다.
학자들은 스코투스가 수도원에 있는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와 파리에서 학문적 철학적 교육을 연마하였고 특히 파리에 머무는 동안 메디아 빌라의 리챠드, 스페인의 곤잘보, 베드로 올리비 같은 이들을 알게 되고 그들로부터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사제 서품 후에는 당시 철학 신학의 중심지였던 파리로 가서 정식으로 신학을 가르칠 자격을 얻는 한편 자신의 신학적 지식을 풍부히 할 기회를 가졌고 여기서 신학 교수의 호칭을 얻은 스코투스는 베드로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03년경 프랑스 왕 필립과 교황 보니파시오 8세 사이의 갈등에서 교황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파리를 떠나 옥스퍼드에 간 것으로 추정되는 스코투스는 이후 다시 파리로 돌아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1307~1308년 독일 쾰른에서 강의하다 1308년 11월 8일 사망, 현지에 묻혔다.
뛰어난 종합력 소유
스코투스는 13세기 전반 아우구스티노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간 논쟁의 연속 상황에서 이 두 사상 체계의 종합을 극적으로 실현해냈다.
이것은 각 학설들을 종합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서도 특출한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런 만큼 당대의 사상가로서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와 비견될 만큼 뛰어난 종합력을 소유한 사상가로 소개되고 있으며 프란치스칸주의와 토마스주의 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노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모든 사상적 흐름들을 하나로 묶어 이해하고 새로운 종합으로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사상적 견해는 아우구스티노, 안셀모, 보나벤투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여겨지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지주의적 경향에 반대해서 의지를 강조하는 주의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사상적 특징
가장 큰 사상적 특징은 인간의 이성보다 의지(voluntas)를 더 역설한 점이다. 그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의지」(affectio commodi)와 「항상 올바른 것으로만 향하고자 하는 의미에서의 의지」(affectio iustitiae)로 구분해서 생각했다.
이러한 구분은 인간의 이성이 의지를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의지에만 해당되며 고유한 의미에서의 의지는 인간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서 이미 항상 올바르고 선한 본성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보다 더 우월하다는 주장으로 드러났다.
스코투스의 사상은 14~17세기 유럽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보다 더 많이 연구되었으며 계속해서 하이데거 등 후대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역사 속에서 교회내 보다 오히려 교회 밖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바보 취급 받기도
왕권신수설을 반대하고 교황권을 강력하게 옹호했기 때문에 16세기 영국 종교 개혁가들에게 호평을 받지 못하고 「바보」(dunce=Dunsman)라는 불명예스런 취급도 받았던 둔스 스코투스.
그는 또 건설적이고 체계적인 사상가, 진리의 충실한 종이라고 여겨지기 보다 성 토마스에 조직적으로 반대한자, 명민하지만 지나친 비판가, 스콜라학의 칸트 등 잘못된 개념으로 오랫동안 객관적 평가를 받지 못했고 올바른 접근에서의 연구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 배경에서 그의 시복식은 역사 안에서 가장 힘들고도 오랜 세월의 시복 조사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만큼 뜻깊은 예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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