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하는 ‘성사’
회화나 조각 등 조형적 이미지로 표현된 매체는 언어가 갖지 못하는 특별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종교예술의 경우, 예를 들어 같은 성서구절을 표현한 것이라도 글로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받게 된다. 다양한 색채와 형태 등, 조형예술이 갖는 표현의 풍요로움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글로는 미처 다다르지 못하던 새로운 감성의 영역을 발견하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는 이를 보는 순간 즉각적으로 본질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더라도 단순한 이미지 하나로 가장 심오한 종교심의 근저에 다다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지난 달 평화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진 김정자 마리스텔라 화백의 작품 중에 「천지창조(http://pds.catholic.or.kr/gallery/bbs/album.asp)」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이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는 아주 다르지만, 단순한 흑색 주조로 회오리 바람이 이는 듯한 하늘을 화면 가득히 표현한 이 작품을 보노라면 창조주 하느님의 엄청난 힘과 위력, 그리고 위대하심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하지만 때로 우리는 시각적 이미지가 제시하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파악하기 보다는 작품의 표면에만 머무르는 경우가 있다. 종교적 의미보다는 미적 가치에만 치중하여 작품을 판단하는 경우이다.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어떤 표현방식을 따랐는가, 보기에 아름다운가 하는 평가 등 미술사적 가치만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것이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은 고가에 거래되고, 성상(聖像)은 사고파는 물건처럼 매매가 이뤄진다.
종교예술도 당연히 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종교예술이 지닌 본질적 의미를 찾는 것이고, 이는 성상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연결된다.
그리스도교는 이미 초기로부터 종교적 이미지로서 성상이 갖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에 주목해왔다. 예수 그리스도나 마리아, 그리고 성인들의 초상은 그려진 인물에 대한 단순한 환기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초월적인 곳에 실재로 존재하는 대상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효과적인 수단 중의 하나로 파악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성상은 지상과 초경험적 세계를 이어주는 일종의 다리와도 같은 것이고, 더 나아가 신의 은총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통로의 역할로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좀 더 발전시켜 보자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이게 하는, 말하자면 일종의 성사(聖事)와 같은 맥락에서 성상을 파악할 수 도 있다.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우리의 미적감각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때로는 추하기까지 한 성상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내밀한 신앙심의 근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성상의 역할 때문이다.
너무나 작가 개개인의 취향을 우선시 하고 있지는 않은지, 현재 우리나라의 성상제작 경향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색채로만 표현된 14처 보다는, 덜 세련되고 투박할지라도 단순하고 소박하게 각 장면을 보여주는 14처 앞에서 신자들은 훨씬 더 효과적으로 기도드릴 수 있을 것이다. 성상 제작 과정에 있어서, 미적 가치만을 지나치게 추구하기에 앞서, 성상, 성화가 이를 대하는 신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먼저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상이란 미술 작품이기에 앞서 종교적 목적을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조수정 <가톨릭대 문화영성대학원/종교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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