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대개 종전과 함께 시작되고, 진짜 사랑은 이별과 함께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게, 가장 절실한 의미에서의 삶이 아닐까 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다니엘이 이국땅에서 마주해야할 개인적 차원에서의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고 동시에 그의 절박한 삶도 시작된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 안에 편입되면서도, 야훼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는 그들과 구별되기, 그들과 구별되면서도 그것이 절대로 자신을 분열시키거나 교란시키지 않게 하기…. 그에게 부여된 결코 만만치 않았던 삶의 과제였던 것이다.
다니 1장 3~7절
3~7절은 주인공들을 등장시킨다. 느부갓네살은 영민한 사람이었다. 억압과 강제라는 이집트 파라오들의 통치노선이 절대로 사람들을 하나로 규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사람이었고, 그런 그가 대안으로 도입한 제도는 정복한 각 나라의 인재들을 뽑아 정계에 등용하는 것이었다.
3~5절은 다니엘과 그 동료들이 이러한 등용책에 의해 선발된 인재들이었다는 것과 그 엄정한 선발기준을 소개함으로써 이들이 소지하고 있던 내외적 우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은 왕족 혹은 귀족 가문의 자손이어야 하고, 인물이 수려해야 했으며, 기본적인 지식들을 이미 교육받은 이들이어야 했고, 학습 속도가 빨라 왕궁에서의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이들이어야 했다(3~4절 참조).
선발된 젊은이들은 곧바로 언어교육을 받게 되고(4절), 왕이 제공하는 궁정 기숙사에서 특수 공동생활을 하며, 궁중 음식과 술을 먹게 되었다(5절). 그리고 이러한 3년 동안의 특수 교육이 마쳐지면 왕의 결정에 따라 정부 각 요소에 등용되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렇게 뛰어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던 다니엘과 동료들이 모두 특이하게도 야훼 하느님의 이름(「-엘」(-el), 「-야」(-jah), 혹은 「-이야」(-iah))을 자신들의 이름 안에 포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이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나의 심판자이시다」를 의미하고, 하나니야는 「야훼는 은혜로우시다」, 미사엘은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아자리야는 「야훼께서 도우셨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갈등은 젊은이들이 내시장 아스브낫에게 새로운 바빌론 이름을 받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다니엘서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이 바빌론 이름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연구해 왔지만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어근들을 추정해봄으로써, 그 이름들 안에 야훼 하느님의 이름 대신 다른 이방신들의 이름이 삽입되어있음을 알 수 있고(벨트사살은 벨(Bel)신의 이름이 들어있고, 사드락이라는 이름에는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의 이름이 들어있으며, 아벳느고는 「느보신의 종」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이로써 저자는 야훼의 아들들이었던 그들이 이제 이방신들의 인재들로 태어나야 하는 강제적 상황에 놓여있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개명사건에 대한 유다 젊은이들의 「유연한 태도」였다. 바로 여기에 저자가 궁극적으로 표명하고자 했던 지혜로운 자의 모습이 숨어있다고도 보여 지는데, 저자가 피력한 현자는 종주국의 통치를 거부하고 그것에 반기를 드는 자가 아니라, 그러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러한 현실 안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고수하고자 하는 것, 원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던 자였다. 즉, 정체성을 유지하는 지혜는 종주국에 대한 반역을 꾀하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었음을 다니엘서 1장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죽을 만큼 강한 삶
죽을 지도 모른다는 각오로써 삶을 절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제 만난 친구 수녀님의 눈빛이 그랬고, 지하철 안에서 우비를 파시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그랬다. 그들의 눈빛에서 발견하게 된 필사적인 생의 의지는 그 어떤 힘보다 종교적이고 감동적이어서, 거룩함이라는게, 숭고함이라는게 바로 저런 거지,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죽을」 각오를 하고 필사적으로 「살고자 하는」 그녀들의 갈망과 소원이 제발 그녀들의 희망을 비껴가지 말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그런 그녀들의 마음이야말로 하느님을 가장 감동시키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성서의 인물들이 다 그렇지만, 다니엘서를 읽을 때 마다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절실함과 지혜이다.
저자는 그것을 하느님의 지혜라고 부각시키고 있는데, 그건 어쩌면 그가 죽음을 정직하게 대면했기에 다가온 선물이요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제 감동적이던 그녀들의 눈빛을 만나서였을까. 다니엘의 의지가 마치 손에 닿을 듯 전해져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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