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고행·극기의 덕목 절대 과소평가 해선 안돼
다만 극기의 정도를 갖고 성덕의 정도 평가는 금물
<질문>
성인전을 읽으면 성인들이 육체에 대한 극기와 보속의 단식 같은 행위들이 많이 나오는데 신학을 공부하신 분들이 제게 말하기를 그것은 당시에 플라톤의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 육체에 대한 학대의 경향이 그리스도교 안에 들어와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혼란스럽습니다. 실제로 요즘에는 극기나 단식은 강조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습니까?
<답>
정원사가 가지를 치는 것은 나무를 죽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수확을 위해서입니다. 사실 현대의 영성은 극기나 고행에 대해 무관심한 듯이 보입니다. 질문대로 극기나 희생, 고행은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육체에 대한 학대로 폄하합니다. 이것은 복음 자체의 힘을 너무 무시하는 것입니다.
플라톤이 그리스도교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플라톤에게 세례를 시킨 것입니다. 상투적으로 혐의를 두어왔던 플라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악을 육신에 돌림으로써 창조주께 책임을 돌리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 자체는 선이로되 창조주를 떠나 이 창조된 선에만 따라서 사는 것이 잘못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육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육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육체의 악한 행실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으로 육체의 악한 행실을 죽이면 삽니다』(로마 8, 13). 이런 표현은 육체에 대한 학대가 아니라 그 육체성이 가지고 있는 본성적 가련함에서 오는 사욕편정에 대한 정화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영과 육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단식, 고행, 극기의 덕목은 절대로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빨리 회복해야 할 감각입니다. 성인성녀들의 삶은 그것을 증언합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될 것은 영성사에 등장하는 오류처럼 극기의 정도를 성덕의 정도로 평가해서는 안되고 그것으로 의인 의식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영혼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그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갈라 5, 24)
-김연준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