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진 자신의 욕망과 허영을 되잡아주게 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게 하는, 그런 사람이나 사물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쓰다보니, 바다에만 가면 자신이 누군지가 기억난다고 말하던 친구도 생각나고, 자식이라는 단어만 떠오르면 당신이 누구이신지로 돌아간다는 나의 부모님도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이처럼 마음 속 깊이 소중한 무엇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마음에 소중한 무엇을 간직하지 못한 사람….
다니엘은 적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궁정」에 인질로 끌려가 있었다. 그가 누추해지거나 비굴해지지 않고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하느님을 믿는 유다인으로서의 기억, 그 선명한 정체성 때문이었다.
갈등의 고조(1장 8~16절)
이제 1장의 핵심 내용이 전개된다. 1장은 모든 갈등 상황을 「음식」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전개하고 있다. 즉 새로운 환경 안에서도 유지되어야할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음식 문제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1, 8~16은 1장안에 들어가 있는 「액자 소설」처럼 독립적인 성격을 띠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8절ㄱ에서 다니엘은 왕이 주는 기름진 음식이 「자신을 더럽히는」 것임을 알고 이를 거절하기로 다짐한다. 결국 1장에서의 시련, 고난, 시험의 동기는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는」(8절) 노력에 의한 것이었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1장의 문제는 왕이 주는 음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을 더럽게 한다는 데에 있었고,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유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존하느냐, 포기하느냐, 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 다짐한 다니엘의 결단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삶에 구원이 있음을 확신했기에 가능했던 자세였다.
본문은 이와 대비되는 또 다른 「두려움」을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바빌론 관리가 품었던 「두려움」이었다. 다니엘이 두려워했던 대상이 하느님이었던 것에 비해, 바빌론의 관리가 두려워했던 존재는 바빌론의 왕이었다(10절). 그가 왕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들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자, 다니엘은 감독관을 찾아가 그를 설득하고 야채와 물만 먹는 선택을 하게 된다. 8~16절에서 부각되어 있는 다니엘의 태도는 변화에 순응하지만 필요할 때는 자기주장을 펴는 대담함이다. 다니엘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듯(하느님은 나의 심판자),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중요한 것은 하느님 앞에 올바로 살겠다는 의지이고, 삶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심판하신다는 확신으로 살아가는 것, 다니엘서가 강조하고 있는 현자(賢者)의 모습인 것이다.
문제의 해결(1장 17~21절)
위기의 상황까지 다다랐던 유다 청년들이었지만 이제 상황이 그들에게 유리해지면서 그들은 왕의 인정까지 받게된다(18~20절). 이로써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련도 끝이 난다. 결국 다니엘서 1장은, 다니엘을 비롯한 유다 청년들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의 특별한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확신과 신념 때문이었음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의 우여곡절 안에서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바빌론 궁중에 있던 대신들과 왕까지도 이제 유다인들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1장의 핵심사상
책을 쓰거나 글을 쓸 때 가장 나중에 쓰게 되는 부분은 「서론」 혹은 「들어가는 말」이다. 다니엘서 1장 역시, 본론이 이미 제작된 이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1장의 주제가 책 전체의 내용을 수렴하는 것임을 암시한다. 앞에서 강조되었지만 여기에서 가장 부각되고 있는 주제는 「정체성의 문제」이다. 다니엘의 성공을 통해 저자는, 헬레니즘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당시의 독자들에게, 유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곧 사는 길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체성
정체성의 문제는 하도 들어서 때로는 진부하게까지 들리는 주제이기도 하다.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실천과 적용이 언제나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기 때문에 고루하고 진부하게 여겨지는, 그런 주제 말이다. 그러나 다니엘서 1장은 이에 대한 화두를 다시금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러는지, 무슨 마음으로 이러는건지, 스스로도 잘 모를 때, 자신을 반듯하게 지켜날 수 있는 비결은 하느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분께서 만사를 주관하신다는 확신으로 하루를 사는 것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우리를 진정 우리 자신일 수 있게 하는 힘과 지혜의 시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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