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흔히들 영성(靈性)을 신심(信心)이나 수덕(修德)과 비슷한 말로 이해한다. 영성은 분명 이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신심이나 수덕보다는 훨씬 더 큰 의미와 내용을 포함한다. 영성은 신심에 비해 훨씬 더 통합적이며 총체적이다. 영성은 하느님에 대한 초월적 이해와 그것이 이루어지는 사랑이 나의 인격성 안에서 어우러지면서 통합될 때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영성은 한편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의 길이며, 다른 한편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음에서 올바르게 드러난다.
이러한 까닭에 영성을 이루어가는 길 역시 이중적이다. 그 하나는 초월성을 내재화하는, 위로의 영성이며, 다른 하나의 길은 이웃과 맺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아래로의 영성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으뜸가는 계명을 묻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로 실천하면 살 수 있다』(루가 10, 27~28)
영성이 이루어지는 형식적 차원에서 보자면 이러한 이중성은 인류의 보편적 생각과도 일치한다. 불교에서는 올바른 수행의 목표를 『위로는 참된 진리를 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下化衆生)』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또한 유가의 근본 교의를 말하는 「대학(大學)」에서는 밝은 덕을 드러내는 것은 안으로 「자신의 몸과 가정을 갈고 다듬고(修身齊家)」, 밖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治國平天下)」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선비들은 「내성외왕(內聖外王)」을 성인의 길이라고 보았다. 안으로는 자신을 성화하고, 밖으로 나아가서는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일이 그것이다.
영성의 이러한 두 차원에는 결코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인 시간적 차이가 없다. 또한 그것이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위로의 영성과 아래로의 영성이라는 두 가지 길은 동시에 이루어지며, 하나가 다른 하나를 불러일으키고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처럼 영성의 길은 이웃을 배제하는 폐쇄된 나만의 완성을 향한 것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웃에 대한 봉사만을 강조하여, 자신의 영적인 길을 돌보지 않는 그 어떤 일면적 선택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기도함으로써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며, 구원의 일이 바로 기도하는 것이다. 지금 아파하고 고통받는 이웃의 눈물을 외면하는 나만의 영성을 하느님은 원하지 않으실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과의 만남 없이 자신의 정의감만으로 사회의 모든 악을 깨부수고, 약한 자를 위해 헌신한다는 용감함도 하느님 자리에 자신을 대신 위치시키는 교만일 뿐이다. 하느님과의 참된 만남이 이웃을 올바르게 만나게 하며, 이웃과의 관계맺음의 성숙함이 하느님과의 참된 만남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작용할 것이다.
문화를 통해 영성의 삶을 살며, 문화에서 드러나는 영성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은 일상의 삶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영성이 이루어지는 터전이 바로 문화의 일상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일상의 문화는 초월을 향한 내면의 길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음이란 바깥의 길에서 이루어진다.
일상의 터전이란 결국 자신의 내면의 진리, 영적 수련의 길과 약하고 소외되는 이웃을 배려하는 사회적 정의가 어우러지는 곳, 문화라 이름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초월성과 타자에 대한 관계성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영성은 이런 문화와 올바르게 상응할 것이다.
신승환 (가톨릭대학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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