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가톨릭 사상계를 대표”
관상생활 옹호 ‘영성의 우월성’ 출판
토마스 아퀴나스 연구에 평생을 바쳐
1971년 말경 프랑스에서 보도된 한 뉴스는 세계 교회의 이목을 모았다.
신 토마스설의 제 일인자, 쟈크 마리탱(Jacques Maritain, 1882~1973)이 아흔에 가까운 나이로 프랑스 툴르즈 인근 링거이(Rangueil)의 「예수의 작은 형제회」에 입회했다는 소식이었다.
아흔에 수도회 입회
그러나 한편 마리탱을 아는 많은 이들은 이 뉴스를 결코 의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입회 전에도 10여년을 수도원에 드나들며 손님처럼 은수자처럼 지내왔던 그였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가톨릭 문필가 블르와(L. Bloy)와 교류하며 영성적 대화를 통해 감화를 받고 가톨릭에 입문한 그는 그 이후 계시의 진정성에 대한 연구에도 몰두했고 「영성의 우월성」이라는 책을 출판할 만큼 관상 생활의 옹호자로, 또 신비 생활의 가장 높은 경지에까지 이르게 하는 기도를 모든 이에게 권하는 신앙인이었다.
현대 가톨릭 사상계의 대표적 철학자라 할 수 있는 쟈크 마리탱은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토마스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사상가로서 철학의 주요 문제에 관한 해답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 정치 교회와 관련된 여러 문제에도 올바른 해명을 시도했던 인물이다.
신앙과 학문의 조화를 꾀하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여 부각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토마스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존재론 인식론 사회 정치 철학 윤리학 교육철학 미학 등 분야에 걸쳐 사상을 전개했다.
또 그 자신은 토마스주의자(Thomist)로 불리길 원하였으나 현대 철학사에서 신(新) 토마스주의자(Neo-Thomist)로 지칭될 만큼 관심과 저술이 철학 전 분야에 뻗치는 다양함과 방대함을 지니고 있었다.
1882년 11월 18일 파리에서 폴 마리탱과 즈느비에브 파브르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앙리 4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00년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했다. 마리탱은 여기서 자연 과학만이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수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또 사회적으로 상대주의가 팽배했던 분위기 속에서 사회주의에도 관심을 가졌으나 만족하지 못했다.
라이사와 결혼후 개종
그런 가운데 페기(C.Peguy)의 권유로 후에 부인이 된 라이사(Raissa)와 함께 콜레즈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에 가서 베르그송의 강의를 듣고 절대자에 대한 욕구를 실감하게 되었고 영성적 감화와 함께 지성적 갈등을 풀 수 있었다.
라이사와 결혼한 지 2년 뒤인 1906년 마침내 가톨릭으로 개종하게 된 마리탱은 클레리사크 신부 영향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을 접하게 되면서 토마스 사상 연구에 평생을 바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은퇴할 때까지 파리(파리가톨릭대 교수) 캐나다(토론토 교황청 설립 중세 철학연구소) 미국(프린스톤대 컬럼비아대 교환교수) 로마(바티칸 주재 프랑스대사) 등에서 학계와 교계를 오가며 다양한 연구 활동 경력을 쌓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는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공의회 초청을 받기도 했으며 1958년 미국 인디애나주 노트르담 대학교에는 쟈크 마리탱 센터가 설립돼 그의 철학 노선을 따르는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토마스주의에 기초한 사상
그의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토마스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고 고전 철학자와 현대 철학자의 특징을 통합한 것으로 알려진다. 50여권에 달하는 저서를 통해 그는 「과학」 「철학」 「시」 「신비주의」는 실재를 탐구하는 많은 진정한 방법에 속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개인으로서 인간은 정치 집단보다 우월하다고 밝혔다.
또 자연법은 세상에 있는 자연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해 자연적으로 알려진 사실도 설명한다고 밝혔고 도덕 철학은 인간 지식에 속한 다른 분야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서로 다른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도 건전한 정치 제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실존주의적 주지주의인 토마스주의에 입각해서 「존재하는 것은 곧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전문가들은 그리스도교 집단 뿐 아니라 개인의 중요성도 강조한 것을 볼 때 그의 철학은 인본주의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고 평한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당대 많은 화가, 시인 등 예술가들을 친구로 두었던 마리탱은 예술 철학의 발달에 많은 관심을 두었으며 부인 라이사와 사별한 뒤 예수의 작은 형제회에 입회, 저술과 기도 생활에 정진했다.
집에 성체 모실만큼 독실
부인 생존시 이들 부부는 교회 허락을 받아 수년간 망동(Mendon)에 있는 그의 집에 성체를 모실만큼 독실한 신앙을 보였다. 이곳에서 마리탱과 라이사는 그들을 만나고자 하는 당대 각계 각층의 교양인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으며 쟝콕토(Jean Cocteau) 지드(Gide) 등 저명한 현대 미술가 예술가들과도 서신 왕래를 통해 우정을 쌓았다.
한 사람의 은수자 명상가로서 전 생애를 영성적으로 이끄는 한편 지성적 노력도 결코 늦추지 않았던 마리탱은 「예술과 스콜라 철학」 「합일을 위한 분리 지식의 한계」 「인간과 국가」 「도덕 철학」 등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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